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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수확하며 드는 생각

밤을 수확하며 드는 생각  팔월이라 서리 내리려 할 제동산의 밤이 비로소 벌어졌네어제는 반쯤 푸르던 것이오늘은 벌써 다 누레졌구나산바람이 한 번 살짝 불자주운 밤이 바구니에 한가득종에게 나무 위로 올라가 따게 했더니잽싸게 긴 장대를 휘두르네공중에서 밤톨이 비 오듯 떨어져떼굴떼굴 굴러 땅에 가득 빛나네언덕 미끄러워 쉬이 굴러가고풀 무성하여 잘도 숨누나크고 작은 것 쓰임 구별하여한데 모았다가 따로 담아서안 좋은 것은 안주로 삼고좋은 것은 제사에 올린다네일일이 동복에게 타이르네쉬지 말고 부지런히 수확하라고  八月霜欲降        팔월상욕강園栗初坼房        원율초탁방昨日半靑者        작일반청자今日已全黃        금일이전황山風一微過        산풍일미과動手拾盈筐        동수습영광課奴上樹摘 ..

눈은 손보다 게으르지요

눈은 손보다 게으르지요   재봉틀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한숨을 쉬는 내게 말했다.눈으로 보면 갈 길이 멀고 완성은 요원해 보이지만그 순간에도 손은 묵묵히 일을 한다고.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일은 끝나 있다고. 돌아보니 언제 다 뽑나 고민했던 잡초 제거도 꾸준히 하다 보니밭이 깔끔해졌고, 얼마나 더 가야 되나 싶던 한라산도 걸음을 내딛다 보니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었다. 눈은 생각보다 게을렀고 겁이 많았다.눈이 손에 있었다면 세상에 되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불평하거나 겁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손이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일들을 늘 이렇게 부지런히 마무리해주기를.한쪽 손으로 다른 쪽 손을 포근히 안아 주었다. - 유희경 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