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스스로를 꾸짖으며[自責]>
인정은 제 스스로 다해야 하고
공론도 마음속에 둬야 하는데
잦은 청탁 무례란 걸 잘 알면서도
정말 약고 어리석게 은혜를 팔아
작은 공에 벼슬을 사양 안 하고
얕은 학문 스승이 감히 됐으니
스스로를 꾸짖는 말 자리에 새겨
언제나 날 살피는 요점 삼으리
人情須自盡 인정수자진
公論亦當思 공론역당사
踰禮頻干謁 유례빈간알
市恩眞黠癡 시은진힐치
功微不辭爵 공미불사작
學淺敢爲師 학천감위사
自責銘諸坐 자책명저좌
時時要省私 시시요성사
- 이색(李穡 : 1328~1396),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6권. <스스로를 꾸짖으며[自責]>
이맘때만 되면 학교는 참 분주하다. 벚꽃의 꽃말이라고도 하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신록 짙푸른 계절의 여왕 5월을 만났으니 20대 초반의 젊은 청춘들이 모인 학교가 분주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맘때 학교가 분주한 것은 학생들이 그들의 청춘과 열정을 불태우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는 5월은 무슨 날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기념일로 가득하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0일 유권자의 날(바다식목일), 5월 11일 입양의 날(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월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 5월 14일 식품 안전의 날, 5월 15일 스승의 날, 5월 18일 민주화운동 기념일, 5월 19일 발명의 날, 5월 20일 세계인의 날, 5월 21일 부부의 날, 5월 25일 방재의 날, 5월 31일 바다의 날(세계 금연의 날) 그리고 여기에 더해 성년의 날인 5월 셋째 월요일과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 8일까지 합하면 5월은 기념일로 똘똘 뭉친 달이 된다.
이런 5월의 기념일 중에서 학생들을 들뜨게 만드는 날은 분명 휴일인 빨간 날이지만, 학교를 분주하게 만드는 날은 단연 스승의 날일 것이다. 학과 교수님 또는 지금 수강하는 강의를 담당하시는 교수님 아니면 이전에 강의를 수강했던 교수님을 찾아 꽃 한 송이를 드리고 노래 한 곡을 불러 드린다. 그러느라 5월의 학교는 참 분주하고 또 그래서인지 학생들에게 별 인기도 없는 나조차도 이즈음 강의실에 들어가거나 연구실에 있으면 찾아오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런데 평소 찾아오는 학생이 없어서인지 학생을 만나면 그저 반갑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스승의 날이라고 불쑥 찾아오는 학생들을 만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대체로 ‘반갑다’, ‘고맙다’에서 시작해서 ‘내가 정말 찾아와 인사하고 싶은 스승인가’, ‘스승의 날이면 기억나는 스승인가’하는 의문으로 끝을 맺는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불교의 중을 ‘스승’이라고 했는데, 스승은 ‘ᄉᆞ승(師僧)’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쓰인 말로, 중을 존경하여 부를 때 ‘ᄉᆞ승’이라고 했던 것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스승을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으로, 사부와 같은 의미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스승’이란 이전부터 상대를 존경하고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뜻을 넘어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승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일어나는 고민이 끝이 없다. 내가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가, 내게 남을 가르칠 지혜가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가, 가르칠 지식이 있기는 한가.
이런 고민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스승의 위치에 놓인 누구나 가졌던 것 같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떠받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이색조차 스스로를 얕은 학문으로 감히 스승의 자리에 올랐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색은 스스로를 책망하고 꾸짖는 말을 자리 옆에 새겨서 언제나 자신을 살피는 요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색은 현재까지도 사표(師表)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색처럼 하기는 쉽지 않다. 수양도 학식도 비교되지 않고 능력도 부족하기에 이색처럼 하기 어렵다. 그런데 고민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색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일 년의 하루, 스승의 날만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 이게 정말 스승을 위한 스승의 날이 아닐까.
글쓴이 : 윤재환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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