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네 글자에 마음을 담아

백광욱 2023. 10. 23. 00:04

 

네 글자에 마음을 담아

혼이 나갈 듯한 이별에 좋은 시절은 다하였네
몇 번이나 밝은 달은 차고 기울었나
악기의 줄이 끊어진 후 세월은 흘러만 갔구나
홀로 잠드는 이 밤 기러기 무리 날아드네
아련하여라
아련하여라
아련하여라
아련하여라

 

내 마음 묶인 듯 답답하여 등불이 꺼지도록 잠 못 이루네
방안은 물속처럼 이불은 쇠붙이처럼 차갑구나
책상에 기대 앉아 비단 휘장 드리워 본다
깊은 근심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쌓인 시름이 얼마나 되려는지
심란하여라
심란하여라
심란하여라
심란하여라

 

驚魂別 佳期歇      경혼별 가기헐
幾回明月盈還缺    기회명월영환결
朱絃斷 流光換      주현단 유광환
一宵孤夢 數行歸鴈일소고몽 수행귀안
漶                       
漶                       
漶                       
漶                       

 

心如結 燈將滅      심여결 등장멸
洞房如水衾如鐵    동방여수금여철
憑書案 垂羅幔      빙서안 수라만
沈憂成緖 積愁難筭침우성서 적수난산
漫                       
漫                       
漫                       
漫                       

 

- 조우인(曺友仁, 1561~1625), 『이재집(頤齋集)』 1권 「채두봉(釵頭鳳)」

 

< 해설 >

독특한 형식의 이 작품은 사(詞)이다. 사는 시와 더불어 한자문화권의 대표적인 운문 장르이다. 본래 시에서 기원했다 하여 ‘시여(詩餘)’라 하기도 하고 음악과 함께 가창하였으므로 ‘사곡(詞曲)’이라 불리기도 한다. 송(宋) 대는 사 문학의 전성기로 많은 유행가가 창작되었다. 남송(南宋) 말엽에는 반주음악이 점차 일실되어 가사(歌詞)만 남게 되었고, 이후 곡명별로 정형화 된 평측과 운에 맞춰 글자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창작되었다. 가창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아름답고 섬세한 내용과 표현, 그리고 일반적으로 시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 이를테면 남녀의 사랑, 민간의 풍속, 여성의 정감까지도 다루었던 특징으로 송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향유되었다.

 

중국에서는 사가 많이 지어졌으나 우리나라는 사를 지은 사람이 드물다. 고려말의 이제현(李齊賢)이 53수, 조선 초기의 김시습(金時習)이 14수로 비교적 많이 지은 편이고 그 외에는 대체로 실험적인 작품 몇 수를 짓거나 이제현의 작품을 차운한 정도여서 그 수가 많지 않지 않다. 조선시대에 사가 창작되지 않은 이유는 곡명마다 평측과 압운(押韻)이 달라 형식적으로 짓기 까다로운 데다 내용 면에서도 사대부의 엄숙함과 거리가 먼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많지 않은 사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 소개해 본다. 위 작품의 지은이 조우인(曺友仁)은 1605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로에 진출하였다. 승문원 박사 사헌부 감찰을 거쳐 형조 정랑 등을 지냈고, 1616년(광해군8) 영창대군의 옥사를 빗댄 「형제암(兄弟巖)」이란 시를 지었다가 경성 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621년(광해군13) 글재주를 인정받아 사신을 응대하는 제술관으로 차출되었다. 그해 7월 인목대비가 유폐된 곳에 설치된 분정원(分政院)에서 숙직하던 중 대비가 거처하고 있는 황폐한 고궁에 대한 감회를 시로 지었는데, 시 구절이 문제가 되어 국문(鞫問)을 받았고 3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석방되어 잠시 승지를 지내다 몇 년 후 사망하였다.

 

조우인의 문집인 『이재집(頤齋集)』에는 그가 지은 42수의 사가 수록되어 있다. 여타 작가에 비하면 많은 수의 사를 지은 편이다. 『이재집』 편찬에 참여한 이식(李植)은 그의 사를 두고, “공은 음률에 뛰어났다. 그러므로 여기의 사곡들은 격률에 맞으면서도 공의 뜻을 잘 담고 있어 편마다 읊을 만하다.(公長於音律, 故此曲子諧和得意, 篇篇可詠)”라고 평가하였다.

 

이 작품의 곡명은 ‘채두봉(釵頭鳳)’이다. 채두봉은 본래 ‘힐방사(擷芳詞)’라는 당나라의 궁중 가사가 그 기원인데, 구절 중 “비녀 끝에 새겨진 봉황처럼 가엽고 외롭구나.(可憐孤似釵頭鳳)”가 유명해져 채두봉이 곡명이 되었다. 이후 많은 작가가 채두봉의 곡조로 사를 지었는데, 그중에서 남송의 육유(陸遊)가 아내와 이별한 후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육유의 채두봉 중 전단(前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붉고 고운 손으로 좋은 술을 보내 주었네. 성 안에 봄기운 가득하고 궁 담장에 버드나무 피었구나. 동풍이 모질어서 사랑은 희미해졌지. 근심스런 마음 품은 채 몇 년을 이별했던고. 어긋났구나. 어긋났구나. 어긋났구나.(紅酥手 黃藤酒. 滿城春色宮墻柳. 東風惡 歡情薄. 一懷愁緒 幾年離索. 錯. 錯. 錯.)

 

중국의 경우 육유 외에도 여러 작가의 채두봉이 있지만, 조선의 경우 조우인의 작품 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조우인이 어떻게 채두봉을 접하고, 곡조의 격률을 따라 작품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육유의 작품을 접하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조선에서 육유는 대단히 인기 있는 시인이었고, 시뿐만 아니라 사 작품도 많이 알려졌으므로 그의 채두봉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우인의 채두봉은 육유의 것과 마찬가지로 정인(情人)과 이별로 인한 그리움과 상심이 주된 내용이다. 전단(前段)에서는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이별할 때 쓴 결별서(訣別書)의 가사인 “악기 줄은 끊어지고 밝은 거울은 흠집이 났네. 아침 이슬은 마르고 꽃피는 때는 지났으니 백두음을 부르며 이별을 아파하네.(朱絃斷 明鏡缺. 朝露晞 芳時歇. 白頭吟 傷離別.)”의 자구 및 운자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귀안(歸雁)’은 때에 맞춰서 돌아가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 두보(杜甫) 등이 이를 주제로 시를 지었다. 주로 시적 화자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후단(後段)의 ‘心如結’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시나 사에서는 주로 꽉 막힌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때 쓰이곤 한다. 이밖에 ‘洞房如水衾如鐵’은 당(唐)나라 시인 유요(劉瑤)의 ‘방 안은 물처럼 차가운데 가을밤은 무르익었네(洞房如水秋夜闌)’, 송나라의 시인 양만리(楊萬裏)의 ‘옷과 이불이 있어도 차갑기가 철과 같다(尙有布衾寒似鐵)’ 구절과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기발한 표현이 있기보다는 고시가의 표현 및 심상을 차용하여 지은 것 같다.

 

그런데 각 단 마지막이 눈길을 끈다. 채두봉은 여러 격률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체 60자에 각 단(段)은 10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마다 7개의 측성운을 쓰고 말미에 마지막 운을 세 번 반복한다. 앞서 육유의 작품에서 말미에 ‘錯’을 세 번 반복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작자의 심정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조우인의 작품은 마지막 운을 네 번 반복하며 8개 측성운을 써서 각 단이 11구이다. 중국의 채두봉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이다. 마지막 운을 한 차례 더 반복하는 변격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더욱 간절하게 전달하고자 한 듯하다.

 

각 단의 마지막 글자는 ‘漶’과 ‘漫’이다. 사전에서는 ‘漶漫’이 붙어서 모호함, 황폐함, 산만함, 아스라함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단(前段)의 경우 이별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 가을날 밤 문득 날아든 기러기에 옛 기억이 떠오르며 쓸쓸함을 느끼는 상황으로 보아 ‘漶’을 ‘아련하다’라고 번역하였다. 후단(後段)에서는 이별의 아픔으로 밤새 잠들지 못한 채 시름겨워하는 상황으로 보아‘漫’을 ‘심란하다’라고 번역하였다. 더 적절한 번역어가 있다면 가르침을 주시길 고대해 본다.

 

조우인이 어떠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지었는지 알 수 없다. 실제 누군가와 이별한 후 그리움과 아픔을 담아 지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고시가의 구절을 차용하여 시험적으로 지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조선 시대 이 작품 외에 다른 채두봉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마지막 운을 네 번 반복하며 기존 채두봉의 격률에서 벗어난 파격을 선보인 점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 반복한 네 글자에는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이별에 아파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절실한 심정을 혹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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