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키우다 얻은 교훈
< 번역문 >
초여름에 나는 남초가 어떻게 자라는지가 보고 싶어서 일찍 심은 북쪽 이웃집에서 몇 모를 얻어와 뒤뜰 서쪽에 심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4, 5월의 어름에 날씨가 가물어 가는 때라 구름과 안개는 걷혔으며 햇볕은 뜨겁고 바람은 싸늘하였으니, 심어놓은 모들이 그을리거나 말라 안타깝게도 소금에라도 절인 것처럼 시들해졌다. 그래서 질그릇과 고리버들 그릇, 나무바가지와 표주박, 광주리, 돗자리와 발 등의 잡다한 물건들을 찾아와서 햇볕이 가려지도록 덮었으니,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날이 기울면 다시 치우고 다음 날에도 똑같이 하였다. 또 계집종과 사내종 두어 명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어 뿌리게 하고 혹 너댓새마다 떡잎을 따고 호미로 흙을 북돋게 하였다. 그랬더니 남초가 자라는 것이 비가 적셔줄 때만은 못해도 다른 풀들보다는 나았다. 5월 갑인일에 비로소 비가 조금 내렸으나 흙먼지만 겨우 적실 정도였고, 하루를 건너뛴 병진일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쏟아지기도 하고 흩뿌리기도 하며, 흐려지기도 하고 맑아지기도 하며 그대로 장마가 이어지더니, 6월 계미일에야 개어 반가운 해가 동쪽 하늘에 뜨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어놓은 남초들이 무럭무럭 자라 무성해가는 기색이 있었고 순을 따고 가지를 꺾어주자 날이 갈수록 무성해졌으니, 가장 큰 잎은 마치 파초잎이 피어난 것만 하였다. 사람들이 볼 때면 그때마다 감탄하며 부러워하였다.
< 원문 >
余於夏初, 欲觀其發長滋茂之如何也, 求於北隣早種處, 得數秧, 使之植於後庭之西. 而適四五月之間, 天將旱, 雲捲霧斂, 暘烈風凄, 其所植也, 或焦或枯, 惜其若沈鹽者然. 搜取陶柳器及木軟瓢與筐篚席簾等雜物, 使蓋遮之, 亦一奇觀也. 趂其日厠, 還爲開去, 而明日亦如之. 又使二三釵髻, 每於昏曉汲水以洒之, 且或四五日摘餠葉鋤培土, 其所滋茂者, 雖不及於雨澤之時, 亦有勝於凡草者也. 五月甲寅, 始少雨, 堇止浥塵. 越一日丙辰, 油然作雲, 霈然下雨, 或注或洒, 或陰或晴, 因而成霖, 以至六月癸未乃濟, 瑞日昇東, 淸風徐來. 於是乎所植之草, 欣欣然頗有向茂之色, 㩱其筍, 挫其枝, 日益蕃茂, 葉之最廣大者, 依然若芭蕉之秀. 人或有觀之者, 輒咨嗟而興羨焉.
< 해설 >
오늘날 우리는 주변에서 담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흡연을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일부러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는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변 곳곳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담배는 개인의 기호품이라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의 사회, 문화, 경제 등과 밀접하게 엮여 있기도 하다. 공공장소, 사회생활에서의 흡연 예절에 대한 시비가 생기기도 하고, 여러 단체에서 흡연자나 간접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금연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며, 나라에서 전매제도를 시행하여 재정을 확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담배는 1600년 전후에 일본으로부터 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에는 남쪽(일본)에서 온 풀이라는 뜻인 ‘남초(南草)’‧‘남령초(南靈草)’, 포르투갈어 ‘tobacco’를 음차표기한 ‘담파고(淡婆姑)’‧‘담파괴(痰破塊)’, 근심을 없애는 풀이란 뜻인 ‘망우초(忘憂草)’‧‘소우물(消憂物)’, 연기로 들이마시는 차(茶)라는 의미의 ‘연다(煙茶)’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618년(광해군9) 경에는 담뱃잎뿐만 아니라 담배의 종자도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1618년에 편찬한 순천(順天)의 읍지(邑誌) 『승평지(昇平誌)』 상권 「약재(藥材)」에 “(남초를)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담파고이다. 남쪽 지방 사람들이 이것을 써서 담습(痰濕)을 다스리는 데 쓰는데 효험이 있다. 그 복용법이 처음에 왜국(倭國)에서 나왔다.[俗名淡婆姑. 南方人用以治痰濕有效. 其法初出倭國.]”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승평지』의 기록에서 보듯 담배는 처음에는 약재로 인식되었으나, 삽시간에 유행하여 조선의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감소(堪笑)』라는 필사본(筆寫本)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한古朝93-154). ‘웃을 만한 이야기’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자료는 지은이를 알 수 없고 분량은 9장에 불과한데, 그중 「남초기(南草記)」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 그대로 담배에 대한 기문(記文)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담배 재배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지은이와 저술 시기를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사대부 식자층이 직접 기록한 담배 재배 경험담이라는 점에서 희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작품에서 담배가 크게 유행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써 글의 서두를 연 뒤, 자신이 담배를 재배한 과정을 적고 있다.
지은이는 담배가 자라는 과정이 보고 싶어 이웃집에서 담배 모종을 얻어와 뒤뜰에 심었다. 의욕적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담배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니, 마침 장마 전의 가무는 시기여서 담배 모종들이 날이 갈수록 시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릇이나 바구니 같은 햇볕을 가릴 만한 것들을 몽땅 꺼내와 모종을 덮었다가 해가 지면 걷었으며, 종들을 시켜 아침저녁으로 물을 반드시 주게 하였고 며칠에 한 번씩 떡잎을 따고 흙을 북돋는 등 담배가 죽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기른 담배는 가뭄이 지나가고 장마가 올 때까지 근근이 버텨낼 수 있었다. 장마가 물러가고 날이 좋아지자 담배는 무럭무럭 자랐고, 담뱃잎 중 큰 것은 파초잎이 생각날 정도로 큰 것들도 있어 구경하는 사람들의 감탄과 부러움을 샀다. 노심초사하며 키운 담배가 풍성하게 자란 것은 매우 기쁘고 흡족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작 담배 몇 모였지만, 만족스럽게 키워내기까지는 한두 달 동안 갖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했다.
지은이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을 잘 키워내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배운 것이 없어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사람을 몇십 년에 걸쳐 가르치고 이끌어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기껏해야 몇 달만 고생하면 되는 담배 재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할 것이며, 해냈을 때 다른 사람들의 감탄과 부러움도 잘 자란 담뱃잎을 부러워하는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한두 달 동안 담배에 정성과 노력을 들여본 결과, 담배를 키우는 일이나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나 그 과정의 어려움과 성취감의 크기가 다를지언정 모두 대상을 정성과 노력을 들여 배양(培養)하는 데 달린 일일 뿐이라며, 그 원리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독자들을 경계하며 글을 끝맺는다.
무릇 사람 된 이가 자신의 몸이 귀하고 영화로운 것을 보고서 어버이의 노고를 생각하고, 이 풀(남초)이 감흥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 자식을 배양할 것을 생각하며 자기 몸에 돌이켜 스스로 힘쓴다면 한갓 풀에 대한 부러움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니, 조그만 보탬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凡爲人者, 見其身之榮貴, 思其親之勤苦, 見此草之興感, 思其子之培養而反躬自勉, 則非徒爲草之羨而已, 亦不無毫髮之補也云爾.
글쓴이 : 임영걸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교육 > 고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글자에 마음을 담아 (2) | 2023.10.23 |
---|---|
'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3) | 2023.10.18 |
통제사의 적벽 선유 (1) | 2023.09.25 |
그토록 하늘빛이 밝은날이면 (2) | 2023.09.15 |
생각의 계절 (2) | 2023.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