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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

백광욱 2023. 5. 18. 00:03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2021)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학습하는가에 관한 연구를 통해 ‘모델링(modelling)’의 개념과 과정을 소개하였다. 누군가를 보고 배우는 것은 인간의 선천적 경향성이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 환경의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영향받지만, 인지가 발달할수록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모델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모델의 사고와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기억한 정보를 삶에 적용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이 관찰학습의 핵심이다.

내가 닮고 싶은 모델이 생길 때마다, 그는 내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직접 알고 지내는 사람만 모델로 초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 잘 알려진 명사들이나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 등 마음먹기만 하면 누구나 내 삶의 모델이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다양한 문학적 경험을 통해 편협한 관점을 벗고,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과 흡사하다.

모든 음악가의 연주는 수업의 모델이 되곤 했다. 학교에 있을 때 해마다 동일한 전공 교과를 맡아 수없이 많은 수업을 했지만, 한 번도 똑같은 수업을 한 적이 없다. 수업내용이 비슷했을지 모르나 그때 그 순간 학생들과 힘을 합해 만들었던 수업 과정과 결과는 그날의 분위기, 감정, 경험 등 여러 가지 변인이 어우러져 빚어진 독특한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학교 현장을 떠나고 보니 이제 나의 눈에 음악가의 연주뿐 아니라 삶에 관심이 간다. 더 좋은 연주를 위한 음악가의 노력에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나의 삶도 좀 더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은 내적 동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백혜선은 모두 닮고 싶은 점이 많은 피아노 연주자이자 매력 넘치는 나의 롤모델이다.

 

#1. 시모어 번스타인
관심 가는 것을 꼭 붙들고 열매 맺을 때까지 매달리기

 

90대의 현역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감독을 맡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타 >다. 그는 여섯 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아흔 살이 넘도록 평생 피아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로, 지금은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그러면서도 여전히 피아노 연주자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90 넘은 현역 피아니스트를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인데, 누구보다 맑고 또렷하게 자유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비결은 관심 가는 것을 꼭 붙잡고 열매 맺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는 삶의 태도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Seymour: An Introduction> 중에서

“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재능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독주자 경력을 접고 나서도 연주에 대한 욕망은 항상 있었어요. 연주의 욕망은 연습을 통해 이어지고 있죠. 그리고 나는 최고의 연주자들과 세계 최고의 공연장에서 실내악 연주는 계속합니다. 나는 연주를 그만두면 훌륭한 교사와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시모어 번스타인, 앤드루 하비,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2. 백혜선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성장하기

 

세바시 강연에서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알게 되었다. 그가 걸어 온 삶의 여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유학해서 유명한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을 한다. 29세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이 되어 10년 만에 사표를 쓴다. 마흔에 다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위해 달랑 두 아이를 데리고 생면부지 뉴욕으로 간다. 그 후 역경을 딛고 다시 피아니스트로, 교수로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서울대 교수직을 가진 거를 후회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제가 피아노 연습할 때 습득한 건데요.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이란 끊임없이 성장하고, 내 그릇 안에서 내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세바시 강연<낯선 환승역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중에서-

 

세바시 강연 <낯선 환승역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그가 좋은 연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가졌던 삶의 태도는 비단 음악뿐 아니라 삶에 큰 영감을 안겨주었다.

 

–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집중하기
– 자신이 선택한 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
–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까 의심이 들 때도 매일 꾸준히 자신을 연마하기
–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간에 의미를 두고 자기 삶을 긍정하기

 

이러한 태도는 그가 좋은 피아노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이자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통하는 마법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by 쿠나 https://brunch.co.kr/@kylee86/41
(이 글은 쿠나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 출처 : 행복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