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예찬
< 번역문 >
밥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반찬을 두어 맛을 돋운다. 성인은 고기가 많더라도 밥 기운을 이기지 않도록 하였으니, 식사는 밥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사치를 부리는 집에서는 날마다 만 전을 쓰고도 오히려 물려하면서 수저를 대지 않으니 또한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무릇 음식을 먹는 이유는 먹지 않으면 반드시 죽기 때문이니, 만일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성인도 아마 먹지 않았으리라. 그리하여 밥은 먹지 않을 수 없으니 고기와 채소로 맛을 돋우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소함을 숭상하는 집에서는 많은 반찬이 있더라도 달가워하지 않는데 빈한한 집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국조의 우의정 안현(安玹)은 남루한 의복과 조악한 음식으로 평생을 지냈다. 밥을 먹을 때 콩잎국뿐이었는데, 맛도 보지 않고 밥을 말았다. 손님이 “국이 맛없으면 어쩌시렵니까?”라고 하자, “맛이 없더라도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 대개 밥을 먹을 때 다른 반찬을 두지 않은 이유는 밥을 국에 말기만 하더라도 맛이 더 있기 때문이다.
< 원 문 >
飯必有盤饌以佐食. 聖人肉雖多, 無使勝食氣, 食以飯爲主也. 奢僭之家, 日費萬錢, 猶厭飫不堪下箸, 抑何心哉? 凡食者, 蓋爲不食必死故也. 苟可以廢食而得生, 則聖人亦將不食矣, 故飯不可已, 而以肉菜助其滋味也. 是以崇儉之家, 雖有多品, 不屑爲也, 況貧灶耶? 國朝安右相玹平生惡衣菲食, 其飯也惟羹藿, 不嘗而和飯. 客曰: “羹若不佳, 奈何?” 荅云: “縦不佳, 容得已乎?” 蓋飯無他饌者, 惟澆饡可以增味也.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5 「요찬(澆饡)」
위는 밥을 국에 말아먹는 이유에 대해 이익이 쓴 글이다.
식사를 할 때 반찬을 두는 이유는 맛을 돋우기 위한 부수적인 목적으로 식사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밥이다. 거금을 들여 온갖 진미를 차렸으면서도 질려하며 먹지도 못하는 사치스러운 사람들의 행태는 저자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생각하는 음식을 먹는 이유는 생존에 다름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밥을 먹지 않을 수 없고 고기와 채소는 맛을 돋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 부수적인 도구는 많을 필요가 없다. 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안현의 일화이다. 안현은 의식(衣食)에 소탈한 나머지 밥을 먹을 때 다른 반찬은 두지 않고 콩잎국의 맛은 보지도 않은 채 말아먹고 말뿐이었다.
이는 음식을 추구하고 심지(心志)를 기르지 않는 행태를 천하게 여기는 유가(儒家)의 일반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 하겠다. 하나 위 글이, 저자가 말했듯이, 콩잎국 밖에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국밥을 너무 낮잡아본 것은 아닌가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밥 국물이 오랜 여정에 지친 나그네의 식도를 지나 위장까지 적시면 허기를 채울 뿐만 아니라 여독까지도 스르르 풀리는 것이다. 술꾼들에게는 숙취의 고통을 푸는 해장국이 될 뿐만 아니라 해장술을 부르는 좋은 안주가 되기도 한다. 사지백체의 힘을 그러모아 해산한 산모들에게는 산통을 잊고 몸을 회복하며 젖을 잘 나오게 하는 생명의 음식이다. 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는 입맛을 살려 기력을 되찾게 해줄 뿐만 아니라 생의 의지까지도 북돋아준다.
특히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이즈음에는 사람들의 몸뿐만 아니라 헛헛한 마음의 허기까지도 달래준다.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국밥을 통해 소생했던가. 국밥은 가히 치유의 음식이라 할 만하다.
글쓴이 : 강만문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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