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살아가기
나는, 밖으로는 지금 시대와 소통하면서도 안으로는 옛것을 추구하고자 한다.
余欲外今而內古
여욕외금이내고
- 김일손(金馹孫 1464~1498), 『탁영집(濯纓集)』 권1 「서오현배(書五絃背)」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다. 그 울림을 통해 사람의 성정(性情)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기에 거문고를 늘 가까이에 두었다. 이는 공자의 예악관(禮樂觀)에서 연유한다. ‘예’가 인간 사회의 바른 질서를 의미한다면, ‘악’은 인간 사회의 조화를 일컫는다. 공자의 유가 세계는 이 ‘예악’으로 대표되는 질서와 조화로 운영된다. 조선 또한 이러한 예악 정신이 가득 찬 이상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조선 선비에게 거문고는 개인의 성정을 다스리고 도(道)를 싣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성군(聖君)의 표상인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사용하였고, 주(周)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한 줄씩을 더하여 칠현금(七絃琴)을 연주했다고 전한다.
김일손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서른이 되던 1493년(성종 24) 겨울, 신용개(申用漑)·강혼(姜渾)·이과(李顆) 등과 번갈아 독서당에서 공부했는데, 틈날 때마다 거문고를 배웠다. 그때 권오복(權五福)도 가끔 옥당(玉堂)에서 내왕하며 배웠다. 김일손은 당시 사람들이 즐겨 연주하는 육현금(六絃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현금을 하나 더 장만하였다. 육현금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독서당에 두었고, 오현금은 혼자 연주할 수 있게 집에 두었다.
어느 날 권오복이 물었다. 언제나 옛것을 좋아한다면서 왜 거문고는 요새 유행하는 육현금을 타느냐고. 순임금의 오현금이나 문왕의 칠현금을 타야지, 그래야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지 않느냐는 질책도 들어있었다. 위의 인용문은 이에 대한 김일손의 답변이다.
송나라 때 성리학자 소옹(邵雍)이 옛날 옷인 심의(深衣)를 입지 않자, 사마광(司馬光)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소옹은 ‘지금 사람은 마땅히 지금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답하였다. 김일손도 이를 본받아 ‘밖으로는 지금의 것을 따르며 소통하면서도 안으로는 옛 성현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뜻을 드러내었다. 김일손에게 오현금은 순임금의 상징이었다. 내면으로는 순임금의 치세를 간절히 염원하면서도 자신의 시대가 원하는 육현금도 저버릴 수 없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外今] 자신의 이상[內古]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삶이었다.
주변의 상황이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다. 다 따라가자니 버겁고, 나 몰라라 하자니 ‘꼰대’로 치부되기에 십상이다. 자칫 ‘나’를 잃어버릴 듯하여 두려운 마음도 살짝 든다. 그래서 ‘원칙’이 필요하다. 나를 잃지도 않고 세상을 외면하지도 않을, 그리하여 ‘나다움’을 지키면서 나답게 살아갈 그 원칙이 ‘외금내고’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글쓴이 : 강정화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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