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워라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백광욱 2018. 5. 3. 07:44




워라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만일 여기에서 얻음이 있으면
어찌 저기에서 잃음이 없겠는가
이지러뜨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진실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치이네

 

 

若有得於此兮   詎無失於彼也
약유득어차혜  거무실어피야

不有虧而能成兮   固必無之理也
불유휴이능성혜  고필무지리야


-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약천집(藥泉集)』 권28 「귀전락사(歸田樂辭)」


해설

 위 구절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지은 〈귀전락사(歸田樂辭)〉의 일부로, 약천이 42세이던 1670년(현종11)에 지은 글입니다.

 

   당시 약천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다 체직되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외가가 있는 결성(結城)으로 내려와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어릴 적 벗인 생원 김상형(金尙亨)을 25년 만에 만났는데, 김상형은 기왕 고향에 머무는 김에 세상사는 잊고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면서 편안한 삶을 누리라고 충고하였습니다.

 

   번번이 대과 급제의 문턱에서 고개를 떨궈야만 했던 늙은 고향 친구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총장격인 대사성을 지내며 중앙 관계에서 승승장구하던 한창 나이의 약천이 별안간 낙향한 뜻을 그다지 미덥지 않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애초에 약천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편안함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세상사에 미련을 두어 부질없이 마음 졸이고 부단히 애를 쓴다면 모처럼 서울을 떠나 낙향까지 하며 추구한 편안함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약천도 벗의 충고를 받아들여 편안히 고향 생활을 즐기겠다는 뜻을 이 글을 통해 표명한 것입니다.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향해 내달렸던 지난 세기 우리의 삶은, 일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보았던 찰리의 일상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부지런히 일만 했던 워커홀릭(workaholic)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으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했던 ‘일에서의 성공’과 양립할 수 없었던 ‘단란하고 안락한 가정생활’은 희생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하여 직장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일거리를 꾸려와 내일의 ‘나아감’을 위해 쉼과 충전의 터전이 되었어야 할 가정까지 일터의 연장으로 만들고 자신을 치열하게 혹사시켜야 했던 우리의 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워라밸(Work&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인 세상입니다. 몇 해 전에는 한 정치인의 캐치프레이즈인 ‘저녁이 있는 삶’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몸은 하나이고 물리적 힘과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일과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는, 일에 경도되었던 이전 세기의 삶에 비해 조금은 ‘적당히’ 포기하는 이른바 ‘균형’이라는 태세 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바로 약천이 말한 어느 한편을 이지러뜨리지 않고는 다른 한쪽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일에 경도되어 조금은 등한시하였던 가정을 위해 조금 여유를 가지고 치열한 일상의 바쁜 걸음을 잠시 늦춰보는 것은 어떨지요. 물론 포기는 ‘적당히’ 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글쓴이장희성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