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오 - 속 깊은 충고
전성지가 부안의 유배지로 가는 것을 전송하며[送全性之赴扶安謫所]
눈얼음 산길이라 말 타고 넘기 힘들 텐데
바람조차 쌀쌀하여 북방 날씨처럼 차네
매사가 장자후 때문인 것만은 아니니
자양의 글이 조용할 때 읽기 좋으리라
雪山氷坂馬行難설산빙판마행난
風日凄凄朔氣寒풍일처처삭기한
萬事不由章子厚만사불유장자후
紫陽書好靜時看자양서호정시간
- 이준(李埈, 1560∼1635), 『창석집(蒼石集)』 권2 「시(詩)」
< 해설 >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창석(蒼石) 이준(李埈)의 시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선조, 인조조의 국난 때에 의병을 조직하는 등 정치와 국방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남인의 여론 형성에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성지(性之)는 문신인 전이성(全以性, 1578~1646)의 자(字)이다. ≪광해군일기≫ 2년 12월 2일 기사에 고향 용궁에 유배되어 있던 그를 다른 곳으로 이배(移配)시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는 그 즈음에 지은 듯하다.
앞 두 구에서 유배길 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것을 말함으로써, 상대가 겪을 고초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하였다. 물론 이면에는 전이성이 이런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을 억울해하며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있으리라는 복선이 깔려 있다.
제3구인 전구(轉句)에서 만약 상대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받아서 전개했다면 이 시는 평범한 송별시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아픈 충고를 하였고, 그게 이 시를 힘이 있게 만들었다. 당시 전이성은 과거(科擧)의 시관(試官)으로 참여했다가 점수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이번 유배는 본인의 탓도 있으니 차분히 자양(紫陽), 즉 주자(朱子)가 남긴 글들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하였다.
전이성은 문과에 급제한 뒤로 지방 수령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광해군일기≫ 편수에 참여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이괄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일등공신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욕심을 버리고 이내 물러나 향촌에서 은거하기를 즐긴 인물이었다. 이런 이에게 주는 충고로는 너무 야박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진정으로 아끼기에 해 줄 수 있는 후한 말이라고 하겠다.
제3구의 ‘장자후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은 유래가 있다. 장자후는 송(宋)나라 때의 권신인 장돈(章惇)을 가리킨다. 폐지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다시 시행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사마광(司馬光), 정이(程頤), 소식(蘇軾) 등 이른바 원우당인(元祐黨人)들을 핍박하여 후대 유학자들에게는 만고의 소인배로 낙인이 찍힌 인물이다.
당시 범순인(范純仁) 역시 그에게 밉보여 먼 지방으로 좌천되었는데, 따라가던 자제들이 연신 장돈 탓을 하며 원망을 하였다. 범순인은 자제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엄하게 제지하였다. 마침 뱃길로 가는 도중에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지게 되자, 범순인은 자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것도 장돈(章惇)이 한 짓이더냐.”
어쩌다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군가를 원망하게 마련이다. “고운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사람 고운 데 없다.”는 속담처럼 자신이 평소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의 소행이라고 지레 의심하여 원망부터 한다. 사실상 죽을 자리로 내몰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 당시의 귀양길이고 보면, 그런 의심과 분노는 더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유배시킨 당사자에 대해 그처럼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자신이 잘못하고도 습관적으로 남을 원망하고, 친구사이라도 진실한 충고를 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고, 고사이다.
글쓴이권경열(權敬烈)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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