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좋은 나라의 조건

백광욱 2017. 7. 18. 07:56

 

 

좋은 나라의 조건

 

잘 다스려진 세상에는
사람마다 제각기 일이 있으니,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신의 힘을 다한다.

 

 

世之治也,人各有事,高者盡職,卑者殫力.
세지치야,인각유사,고자진직,비자탄력.


-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권2 「질언(質言)」

 

해설

   조선 후기 영ㆍ정조 시대에 활동하신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선생께서 지으신 『청성잡기』 제2권 「질언」 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잡기’란 이런저런 내용을 체계 없이 기록하였다는 뜻이고 ‘질언’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실을 딱 잘라서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체계 없이 적으신 몇 구절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 새삼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잘 다스려진 세상에는 사람마다 제각기 일이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오늘날 청년층의 사회 진출은 너무 어렵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희망에 부풀어 미래를 설계하고 커다란 꿈을 꾸어야 할 청춘들이 당장 갈 곳이 없어 방황합니다. 수백 통의 이력서를 쓰느라 세월을 보내고, 수백 대 일이 넘는 공무원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지방으로 몰려다니는 그들에게, 세상의 어른들은 격려나 위로는커녕 오히려 약해빠졌다고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현실성 없는 대안을 충고랍시고 무책임하게 내놓기도 합니다.

   실패와 역경과 비방은 모두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일이다. 조용히 이를 진정시키면 저절로 아무 일이 없게 된다. 아무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역경은 다시 순조로워질 수 있으며 비방은 도리어 복이 될 것이다. 오직 기운을 가라앉히고 분수를 편안히 여기는 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敗運逆境橫謗, 皆人之所常有也. 靜以鎭之, 自當無事. 非有無事, 敗可以復興, 逆可以復順, 而橫謗反爲之福. 惟降氣安分者能之.]

   같은 책 제4권 「성언(醒言)」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언’은 깨우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실패와 역경, 비방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그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기운을 가라앉히고 분수를 편안히 여기라는 선생의 말씀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 처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다시 한 번 일어서 보라는 뜻이겠지요. 힘내라는 말조차 건네기 미안하지만, 이 나라가 좀 더 잘 다스려지는 나라가 될 것을 기대하며, 청춘 여러분께 파이팅을 외쳐 봅니다.

 

글쓴이조경구(趙慶九)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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