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만전당(晩全堂) 홍가신이 부여 현감(扶餘縣監)으로 있을 때, 낙화암(落花巖) 서쪽에 ‘이은암(吏隱菴)’이라는 암자를 지었다. 이 글은 그 경위와 의미를 객이라는 가상의 상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이은(吏隱)은 관리 생활을 하면서 은거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은거라고 하면 흔히 번잡한 속세를 떠나 외딴곳에 숨어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땔감을 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만전당 자신은 그런 통념을 깨고 벼슬살이하는 와중에도 얼마든지 고을 백성들 모르게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은자처럼 지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은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속세를 아예 벗어나 은거하는 것을 소은(小隱)이라고 한다. 작은 의미의 은거라는 것이다. 소은은 다시 종사하는 일이나 은거하는 곳에 따라 어은(漁隱), 임은(林隱), 야은(冶隱)이라고도 한다. 시끄러운 도시나 분쟁이 많은 조정 속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은자의 여유를 누리는 은거는 대은(大隱)이라고 한다. 대은은 이은(吏隱), 시은(市隱)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중은(中隱)」이라는 시에서, 한가로운 벼슬을 맡아 여유롭게 지내는 은거를 중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대은을 소은보다 더 높이 쳤다. 그만큼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은, 대은, 시은으로 유명한 이로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동방삭(東方朔)과 진(晉)나라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이 있다.
낭관(郞官)으로 있던 동방삭이 전혀 속박을 받지 않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자 사람들이 모두 미치광이라 하였는데, 술이 거나하게 오른 그는 말했다.
“나는 조정안에서 속세를 피해 사는 사람이다. 어찌 옛사람처럼 깊은 산 속에서만 속세를 피하겠는가.”
그에 비해 도연명은 도시에서 은거한 경우이다. 「음주(飮酒)」라는 시에서 그는 시끄러운 속세에서도 여유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들 사는 곳에 집을 지었지만 結廬在人境 거마의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네 而無車馬喧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問君何能爾 마음이 멀어지면 지역은 절로 외지는 것이라오 心遠地自偏
속세의 이해에 초연하게 되면 수레 소리 시끄러운 번화가에 살더라도 산골짜기에 숨어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의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는 기풍을 지녔더라도 굳이 바위 동굴 같은 데서 거처할 필요는 없다.[有浮雲富貴之風 而不必巖棲穴處]
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탈출하기만 하면 곧 안식처가 펼쳐질 것처럼 여기겠지만, 마음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그곳도 도시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낚시를 하러 갔지만, 막상 낚시를 하다 보면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조바심을 내게 되더라는 한 출판인의 개탄에서 실감할 수 있다.
송(宋)나라 때의 시인인 성재(誠齋) 양만리(楊萬里)의 시가 언제나 와 닿는 이유다.
중이 되기 전에는 일 많은 속세가 싫더니 袈裟未著愁多事 막상 승려가 되고 보니 일이 더욱 많구나 著了袈裟事更多
새해에는 도시에서 은거하는 노력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