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옛사람의 사투리

백광욱 2024. 10. 23. 00:05

 

예사람의 사투리

 

《주역(周易)》의 현토는 선대(先代)로부터 영남 사람들이 해왔기 때문에 사투리가 많다.

 

 

《周易》吐, 祖宗朝嶺南人所懸, 故多鄕音矣.

주역토, 조종조영남인소현,  고다향음의.

 

《선조실록》30년 5월 27일 기사

 

옛날에는 지금보다 지역 간의 언어가 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간혹 사투리를 심하게 쓰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데 옛날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대부들도 당연히 자신이 오래 살아온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했겠지만 그 실상은 알기 어렵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서만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 글이라는 것이 대부분 한문 문어체라 사투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혹 다른 지역으로 유배를 가거나 관직 생활을 하러 갔던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말을 기록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어휘들을 기록하는 수준에 그쳤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니 사투리의 억양이나 실생활에서의 용례까지는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사대부들은 출신지역에 상관없이 표준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랬을 리가 없다. 

  퇴계 이황 선생은 생의 대부분을 영남 지역 에서 보내셨으니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를 썼을텐데 가끔 서울에 올라오면 서울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을까? 어쩌면 선생의 사투리가 너무 심해 서울 토박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을까? 지금도 간혹 그러듯이 서울에 있을 때만이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끝을 올리는 어색한 서울말을 사용했을까?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왕을 만날 때는 어떠했을까? 
 
  사료를 보면 드물게나마 사투리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은 일상의 대화보다는 경서의 현토나 언해에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영조가 신하들과 《맹자》를 강독하다가 언해의 발음을 보고 사투리냐고 묻자 김용경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언해가 영남에서 나왔기 때문에 보통 언해의 글자 발음은 대부분 사투리입니다. 
諺解出於嶺南, 故凡諺解字音, 率多鄕音.
《승정원일기》 영조 1년 8월 28일 기사
 
  당시에 지금처럼 표준어를 공식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왕족과 사대부들이 사용하는 말을 지방이나 민간의 말과 분명하게 구분짓는 경향은 있었을 것이다. 언해나 현토를 사투리로 적는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유희춘은 아동의 한자 학습서인 《신증유합(新增類合)》을 편찬하였는데, 선조는 이 책을 매우 칭찬하면서도 글자 풀이에 사투리를 썼다고 아쉬움을 표하였다. 이에 유희춘은 자신이 지방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쓰게 되었다고 해명하였고, 이후 책의 사투리를 교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유희춘은 해남 출신이니 글자의 의미를 풀이할 때 전라도 사투리를 적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교정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전라도 사투리를 고증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사투리가 사건 해결의 단서로 쓰인 사례도 있다. 명종 4년(1549)에 갑사(甲士) 전석정(全昔貞)이 한글로 적힌 책 하나를 역모의 증거라고 가지고 와서 고발하였다. 조정은 전석정의 진술에 이름이 나온 이필(李弼)·전귀선(全貴先)을 국문하는 한편, 전석정을 의심하였다. 사투리 때문이었다. 
 
이필과 전귀선이 자백하지 않으니 형장을 치며 신문해야 합니다. 다만 고발자인 전석정의 진술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또한 전석정이 바친 언문으로 적은 책에 토리(土俚)의 말【민간에서는 사투리[四土俚]라고 한다.】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토리의 말을 쓰지 않고 전석정만 토리의 말을 씁니다. 전석정을 다시 심문하게 하소서.
李弼、全貴先不服, 當刑訊矣. 但元告全昔貞供辭, 多有可疑之事. 且昔貞所納諺書冊, 有土俚之語, 【俗言四土俚也.】 而他人不爲土俚之語, 昔貞獨爲土俚之語. 昔貞, 請更詰.
《명종실록》 4년 6월 23일 기사
 
 
  전석정이 바친 언문책에는 역모의 계획이나 왕실에 대한 불경한 말 등이 쓰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사투리로 쓰여 있었다. 정작 고발당한 사람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데 고발자인 전석정은 사투리를 쓰니, 수사 담당관은 혹시 이 책을 전석정이 쓴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이필, 전귀선과 전석정을 대질 심문한 뒤에 수사관은 전석정이 책을 쓰고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한 것이라 결론을 내렸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전석정은 자기가 사투리를 쓴다는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극이 나름 역사 고증을 철저하게 하지만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영남과 호남(간혹 충청도)의 사투리를 핵심적인 개그코드로 활용했던 영화 '황산벌', 이성계와 이지란이 북방 지역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했던 드라마 ‘정도전’ 정도를 제외하면 사극의 등장인물, 특히 귀족이나 양반계급의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사용한 사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모를까 평생을 지방에서 살다가 갓 서울에 올라온 사람은 당연히 완벽한 네이티브 사투리를 구사했을 것이고 몇년 정도 서울에 계속 살고 있는 사람은 억양은 남아있되 상당히 서울화된 사투리를 구사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다가도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출신지역에 따라 저마다의 사투리를 쓰는 사극이 나오면 어떨까. 영호남은 물론이고 제주도에다 북한지역까지 포함하면 아주 다양한 사투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막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글쓴이  :   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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