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보다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백광욱 2023. 2. 15. 00:02

 

보다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내가 평생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홀로 아는 것이니,
그것은 뜻을 구함이 높지 않고 재주를 쓰는 것이 넓지 못했던 것이다.

 

余平生有所恨, 人所不知而己獨知之者, 盖以其求志不高, 用才不廣爾.
여평생유소한, 인소부지이기독지지자, 개이기구지불고, 용재불광이.

 

- 홍세태(洪世泰, 1653∼1725), 『유하집(柳下集)』10권, 「자경문(自警文)」

 

홍세태는 1682년 통신사 부사 이언강(李彦綱)의 자제군관으로 일본에 가서 자신의 문재(文才)를 펼치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사신이 조선의 시를 요구했을 때 조정에서 홍세태를 시켜 시를 지어 주게 했을 정도였다.

 

   홍세태는 원래 노비였는데, 그의 재주를 아꼈던 김석주(金錫胄)와 이항(李杭)이 200냥을 내어 속량시켜 주었다. 홍세태는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형제와도 가까이 지내며 시문을 주고받았고, 김창협의 권유로 여항 시문집 『해동유주(海東遺珠)』를 편찬,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이지만, 일흔 살에 지은 「자경문(自警文)」에는 제대로 성학(聖學)을 공부하지 못한 채,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만 얻고” 만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다. 독서하는 선비가 되지 못하고, “뇌가 없는” 시인이 된 것을 슬퍼하면서, 죽기 전까지는 ‘도(道)’를 듣겠노라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당시의 신분 질서에서만 놓고 보면 홍세태가 노비에서 벗어나 역관, 제술관이 된 것만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재주에 비추어 보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홍세태는 자신의 제자인 정민교에게 준 글(「송정계통서(送鄭季通序)」)에서도 하늘이 재주를 낳음에는 귀천이 없지만, 재주가 세상에서 쓰이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라 귀천의 차이가 있다고 하기도 하였다.

 

   지난 3년간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었고, 이것이 우리 삶을 크게 흔들어놓았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 변화 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불평등, 양극화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 정신적·신체적 건강의 불평등 그리고 교육의 격차를 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말하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평등한 기회는 키가 150cm인 사람과 180cm인 사람이 동일선상에 서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150cm인 사람에게 30cm의 디딤돌을 받쳐주는 것일 것이다. 홍세태의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공평한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글쓴이  :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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