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뽑다
< 번역문 >
내 나이 쉰네 살에 오른쪽 잇몸 첫 번째 이가 아무 이유 없이 흔들리니 통증을 견딜 수 없기에 의원에게 뽑게 하였다. 느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쓴다.
내 나이 세 살에 네가 처음 나서 내 입의 빗장이 된 지 오십여 년이구나, 분쟁과 우호가 너에게 달려 있었고 음식의 맛을 너를 통해 알았지. 내가 한창 강건할 때는 너 역시 튼튼해서 말린 고기와 딱딱한 떡도 칼처럼 잘랐었다. 내가 항상 옥보다 더 귀중히 여겨 이불을 물어뜯지도 돌로 양치하지도 않았지.
< 원문 >
吾年五十四, 右車第一齒無故動搖, 痛不可忍, 令醫拔之, 感而有作.
吾生三歲, 汝始生焉, 爲我口關, 五十餘年. 興出戎好, 職汝所爲, 酸鹹甘苦, 由汝得知. 吾方強健, 汝亦堅牢, 乾肉勁餠, 截之如刀. 吾常寶愛, 不啻珙璧, 不曾嚙被, 不曾漱石.
- 채수(蔡壽, 1449~1515), 『나재집(懶齋集)』권1 「발치문(拔齒文)」
< 해설 >
어린 시절 이를 앓았을 때의 기억이 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이를 뽑자고 하실까봐 주저하면서 통증을 참고 참다가 결국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말씀드리곤 했는데, 이가 어떤지 살펴보시고 결국 뽑자고 하셨다. 필자는 하필 치과병원이 없는 시골에 살았고 아버지는 하필 다년간 이를 뽑은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먼저 손가락을 집어넣어 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가늠하셨다. 대체로 이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갑자기 힘을 줘서 빼려고 하셨는데 다행히 이가 충분히 흔들려서 바로 뽑히면 다소 놀라기는 해도 고통에서 해방되지만, 바로 빠지지 않을 때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받은 기습 공격에 반은 놀라고 반은 아파하면서 울먹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임장에서도 곤란하셨을 것이다. 한참을 울다 지친 나를 다시 어르고 달래고 나면 전략은 달라진다. 이를 빼지 않으면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정공법으로서 어조도 거의 위협에 가까웠다.
손으로 뽑히지 않으면 실을 찾으셨다. 처음 당했을 때는 의아해했는데 그 의문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풀렸다. 실로 매듭을 만들어 이에 걸고 반대편 매듭은 문고리에 거셨다. 필자의 이는 그렇게 잇몸의 일부와 함께 몸에서 분리되었다. 피와 눈물이 멎으면 아버지는 지붕에 던지라고 하셨다. 까치가 헌 이를 물어가고 새 이를 나게 해준다고 하셨다. 지금도 선명한 통증과 함께 날카롭게 각인되어 있는 유년 시절 기억의 한 부분이다.
위 글을 쓴 채수에게도 이를 뺀 기억은 특별했던 모양이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보철 치료가 없었던 당시에 이의 부재는 현재보다 더 큰 상실감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또 작자가 뺀 이는 어금니인 만큼 음식을 씹는 데 타격이 컸을 것이다. 노년의 나이에는 이가 성해야만, 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허나 작자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이의 부재를 한탄한 것이 아니다. 이의 부재를 자신의 노쇠함과 연결짓는다. 근육이 시들고 머리가 세고 눈이 어두워지는 등의 일반적인 노화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인 것이다. 장장 50여 년 동안 한 몸이었다가 떨어져 나간 이를 보며 문득 인생이 덧없다고 느낀다.
작자의 삶은 어떠했던가. 불과 21세의 나이에 문과 갑과 장원으로 입격한 후 30여 년 동안 수많은 요직을 역임했고 어려서부터 문예로 명성을 얻어왔다.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영광도 누렸다. 명나라에 사신을 다녀오기도 했고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임무도 맡아왔다. 정치적으로 침체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곧 다시 기용되었다. 이 글을 지을 즈음에는 형조 참판에 오른다.
생명 현상은 사회적인 나의 모습과 관계가 있으면서 관계가 없이 외따로 흘러간다. 한 개체로서 인간의 생로병사는 분명 삶의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이면서도 사회적인 자아와는 별개이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이러이러한 사람이지만 그것은 오늘 아침 이를 하나 뺀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작자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의 부재라는 현상에 착안하여 글을 짓고 그 글의 결구에 인생의 덧없음과 불사(不死)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나 싶다.
삶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지만 또한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다. 그 누가 생로병사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있는가. 작자는 자신이 노쇠했고 이는 죽음과 얼마 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자각에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하루하루 순간순간 충실하게 살았던 삶을 덧없다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생사의 굴레에 매여 있는 존재로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초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즐길 뿐이다. 작자는 위 글을 지은 지 몇 년 후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거문고·바둑·시·술을 즐기며 세상의 시비와 영욕을 잊었다고 했다.
헌 이를 물어간다는 까치는 상실감을 희망으로 보철해주는 역할을 한다. 작자에게는 위 글이 작으나마 상실감을 비우고 삶에 대한 자세를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글쓴이 : 강만문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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