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권귀를 비웃다

백광욱 2021. 7. 22. 00:02

 

권귀를 비웃다 

 

 

푸른 등라 우거진 곳 밤은 깊었는데
한번 누워 보니 홀가분하여 온갖 생각 사라지네
멀리 산굴에 구름 피어나 다시 달을 가리고
작은 시내에 조수 가득 차 다리가 잠기려 하네
몸에는 벼슬이 없으니 가난해도 오히려 즐겁고
흉중에는 시서(詩書)가 있으니 비천해도 또 교만하다
서글퍼라 새벽이 찾아온 우물에는
벽오동에 서린 가을 기운이 또 쓸쓸하겠지

 

綠蘿深處夜迢迢           녹라심처야초초
一枕翛然萬慮銷           일침소연만려소
遠岫雲生還掩月          원수운생환엄월
小溪潮滿欲沈橋          소계조만욕침교
身無簪組貧猶樂          신무잠조빈유락
腹有詩書賤亦驕          복유시서천역교
怊悵曉來金井畔          초창효래금정반
碧梧秋氣又蕭蕭          벽오추기우소소

 

 

- 성여학(成汝學, 1557~?), 『학천집(鶴泉集)』 2권, 「권귀(權貴)를 비웃다 - 당시 이이첨이 공의 시를 보고자 하였는데 공이 이 시를 지어서 거절하였다[嘲權貴-時李爾瞻求見公詩 公作此詩以絶之]」

 

 

조선 중기를 살았던 성여학은 시에 뛰어나 당시 대가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위 시는 제목에서 보이듯 이이첨이 성여학의 시를 구해 보려 하자 이를 거절하며 지은 작품이다. 이이첨이 누구인가? 광해군 대의 실력자로 영창대군을 죽음으로 몰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킬 정도로 정국을 좌우했던, 그야말로 권세와 지위를 가진 권귀이다. 그의 눈에 들기만 한다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무엇 때문에 그의 관심을 거절한 것일까.

 

   푸른 등라가 우거진 것을 보아 시의 배경은 한여름으로 보인다. 시인은 깊은 밤 자리에 누워 먼 산에 핀 구름이 달을 가리고 시냇물이 다리까지 넘실대는 광경을 바라보더니 『논어』 「학이(學而)」의 구절을 이용하여 자신의 속내를 표현해 본다.

 

   자공이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귀해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괜찮다. 그렇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 못하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가난해도 오히려 즐겁다’는 지금 자신에게는 벼슬이 없어 가난하지만, 이 밤의 풍광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는 것을 넘어 공자가 말한 가난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경지까지 도달한 상태이다. ‘비천해도 또 교만하다’는 무슨 말일까. 그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는 없었지만, 흉중에 내키는 대로 시를 짓고 글을 읽는 등 정신적인 자유와 풍요가 있었다. 이러한 삶에 대한 자부심을 ‘교만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마음에 권귀의 유혹이 틈입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은 세속의 권귀가 아니라 즐거움과 교만함에 무젖게 한 한여름 밤의 풍광이 가고 쓸쓸한 가을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였다.

 

   성여학은 가난하였지만 여유와 자부심이 충만한 삶의 태도를 피력하며 이이첨의 러브콜을 거절하였다. 그렇다고 벼슬에 완전히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닌 듯하다. 1615년(광해7) 『광해군일기』에는, 예조(禮曹)에서 진사 성여학이 시학 교관이 되기를 원해 정문(呈文)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그를 시학교관으로 삼아달라고 아뢰자 이를 윤허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누차 환로를 모색한 것으로 보아 벼슬 자체를 꺼렸기보다는 광해군의 실정을 조장하고 폐모론을 촉발한 이의첨과 같은 불의한 권귀의 수혜가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권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신에 부귀와 영화를 선사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것이 불의한 데서 온 것인지 잘 살펴야 한다. 공자도 ‘불의하면서 부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약 성여학이 이이첨에게 잘 보여서 한 자리 차지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조반정 후 이이첨의 몰락과 함께 그의 말로 역시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귀를 마주한 자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글쓴이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