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대비하되, 신중하라.

백광욱 2021. 7. 27. 00:03

 

대비하되, 신중하라. 

 

비유하자면 물건이 눈앞에서 멀어 가면 차츰 작아지고 가까우면 차츰 커지는데, 작으면 살피기 어렵고 크면 보기 쉬운 것과 같이 환난(患難)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比如物之在眼 漸遠則漸小 漸近則漸大 小則難察 大則易見 患難亦同

비여물지재안 점원즉점소 점근즉점대 소즉난찰 대즉이견 환난역동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26 「경사문(經史門)」 <조양자(趙襄子)>

 

훗날의 어려움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급박한 일이 닥치고 나서야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는 경우가 잦다.

 

   어쩌면 훗날의 어려움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노력이 정말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인지 세심히 따져보는 태도일 것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제후였던 조양자에 대한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의 일갈은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조나라에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조양자의 신하는 견고한 성벽이 있거나 곡식이 많이 비축된 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성벽을 쌓고 곡식을 비축하면서 민심을 잃었으니 그리 가면 안 된다 판단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었던 진양(晋陽)으로 가서 나라를 보전했다. 얼핏 보자면 조양자는 어려운 시기를 지혜로 극복해나간 훌륭한 군주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호는 조양자의 어리석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왜 꼭 화(禍)가 닥쳐야만 민심을 수습하는 게 중요한 줄 알게 되냐는 것이다. 평소에 백성들의 힘을 과도하게 써서 성을 쌓고 곡식을 비축한 것은 분명 제 딴에는 미래를 대비한다고 한 일일 것이다. 결국 화(禍)를 만나고 나서야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으니 지혜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성호는 아래와 같이 평했다.

 

   비유하자면 물건이 눈앞에서 멀어 가면 차츰 작아지고 가까우면 차츰 커지는데, 작으면 살피기 어렵고 크면 보기 쉬운 것과 같이 환난(患難)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比如物之在眼 漸逺則漸小 漸近則漸大 小則難察 大則易見 患難亦同]

 

   마치 물건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잘 안 보이는 것처럼, 환난(患難)이 멀리 있으면 환난의 본질을 알기 어렵다. 설사 자기가 열심히 환난에 대비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도, 막상 환난이 가까워지고 나면 대번에 그간 해온 일이 헛수고였단 사실을 알게 된다.

 

   성호의 일갈이 어찌 조양자만을 향하는 것이랴. 우리는 미래를 대비한답시고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막상 그게 진정으로 환난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조양자가 환난을 마주해서 비로소 크게 깨닫고 나라를 보존한 것처럼, 화(禍)를 마주했을 때 각성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환난이 들이닥쳐서야 깨달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미리 원칙을 지키는 데 힘쓰는 것이 상책이라는 성호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메아리치고 있다.

 

글쓴이  :  정희철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