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마음이 죽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마음이 죽는 것이다. 마음이 죽지 않는 약을 구하여 먹는 것이 급한 일이다. 이 책은 마음을 죽지 않게 하는 약일 것이다.
哀莫大於心死, 求不死之藥, 惟食爲急, 是書者, 其惟不死之藥乎.
애막대어심사, 구불사지약, 유식위급, 시서자, 기유불사지약호.
- 조식(曺植,1501-1572), 『남명집(南冥集)』권2 「서이군원길소증심경후(書李君原吉所贈心經後)」
이 글은 남명(南冥) 조식이 서른 한 살 되던 해(1531년), 서울에 살던 어린 시절의 벗인 이원길(李原吉)이 보내준 『심경(心經)』의 뒤에 쓴 글이다. 이원길은 바로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이다. 이준경과 남명은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죽마고우인데 이 당시 이준경은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비록 착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적지 않다”는 맹자의 말과 함께 이 책을 보내주었다.
『심경』은 애초 송대 유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의 저술이다. 진덕수는 서산(西山)이라는 호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강직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 올린 수십만 자의 상소문은 모두 당대의 문제에 절실한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대학』의 뜻을 부연하여 지은 『대학연의(大學衍義)』는 제왕학의 교과서로 널리 읽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 사람들의 꽉 막힌 성품을 걱정하며 선비들의 강습교재로 이 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주로 유교경전인 사서삼경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맹자』에서는 열두 대목이나 뽑았다. 그리고 <양심설(養心說)>,< 성가학장(聖可學章)>,< 사잠(四箴)>, <심잠(心箴)>은 송대 도학자 주돈이와 범준, 정이의 글에서 뽑았고, <경재잠(敬齋箴)>, <구방심재잠(求放心齋箴)>, <존덕성재잠(尊德性齋箴)>등은 모두 주희의 글이다. 마음공부의 명문들이라고 말한 것은 거의 가려 뽑은 셈인데 그 중심을 흐르는 사상은 마음의 삼감, 경(敬)이다.
진덕수는 이 책을 짓고는 새벽에 일어나 꼭 향을 사르고 꼿꼿하게 앉아 자신이 고른 십수 편을 읊조렸다고 한다. 이것이 송대를 지나 원대를 지나면서 은사인 정복심(程復心, 1279~1368)이 이 책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명대에 이르러 정민정(程敏政, 1445~1499)은 기존의 성과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1492년 『심경부주(心經附註)』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 책이 이후 조선에 유입되었으니 동고 이준경은 조선에 유입된 비교적 초기에 이 책을 구해준 셈이다.
이보다 여덟 해 전인 1523년 스물세 살의 청년 퇴계 이황은 처음 성균관으로 유학하면서 여관에서 이 책, 『심경』을 구해 읽고는 심학의 연원과 심법을 정비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으니 1520~30년대 『심경』은 조선 학계를 강타하며 신선한 지적 충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남명은 이 책을 모두 읽고는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바로 마음이 죽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그 마음이 죽지 않게 하는 구급약으로 이 책을 지목한 것이다. 작년 9월 경상대학교에 취직한 다음 일전에 허권수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으로 사는가 –실천의 사상가 남명 조식과의 만남』을 읽는 가운데 가장 마음을 ‘쿵’하고 울렸던 구절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정녕 무엇일까? 진정 마음이 죽는 것이다.
이 말은 『장자』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한 말로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 대목의 다음 구절은 “사람의 육신이 죽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글쓴이 : 함영대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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