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天下無無一能之人
천하무무일능지인
- 정조(正祖, 1752~1800), 『홍재전서(弘齋全書)』권172 「일득록(日得錄)」12 <인물(人物)>2
< 해설 >
서얼허통법(庶孽許通法)은 첩이 낳은 서자(庶子)와 얼자(孼子), 그 자손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일이다. 고려 시대에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 없었으나 1415년(태종 15) 서선의 건의에 따라 서얼에게 벼슬을 금하기 시작하였고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이 편찬되면서 법으로 확정되었다. 서얼은 능력이 있어도 관직에 진출할 수 없었으며 신분 중심 사회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명종 때 서얼허통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양인(良人) 첩의 자손은 손자부터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유학(儒學)이라 부를 수 없었고 합격증에 서얼 출신임을 밝혀야 했다. 이이와 최명길도 서얼허통을 주장했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허통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갔으며 서얼들의 집단상소도 종종 일어났다. 결국 조선 정부는 1777년에 서얼허통에 관한 <정유절목(丁酉節目)>을 발표했다.
이 절목은 서얼에게 일정한 등급 아래의 벼슬만을 주던 '한품서용(限品敍用)'을 약간 완화한 것으로 『대전통편(大典通編)』에도 실렸다. 아울러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서얼 출신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기용하였는데, 이들은 직위는 낮았으나 외교문서 제작, 『일성록(日省錄)』기록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도 서얼 차별의 관습은 여전했으며 갑오개혁 때에야 완전히 폐지되었다.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天下無無一能之人]"는 서얼허통법의 주역이었던 정조의 말이다. 그의 어록인 「일득록(日得錄)」에 실렸으며 이 부분은 1789년에 김조순이 기록하였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만약 여러 사람을 모아 각각 그 장점을 써서 재능을 서로 통용하게 한다면, 세상에는 버려진 사람이 없을 것이고 사람은 재능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若聚十百人而各用其長, 便爲通才, 如此則世無棄人, 人無棄才矣.]"
정조의 서얼허통법과 "천하에 재능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신념은 서얼 인재들을 등용하는 디딤돌이 되었고 그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문화유산을 완성하였다. 오늘날 신분 제도는 없어졌지만 신체적 조건이나 물질, 환경에 대한 크고 작은 차별과 너그럽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누구나 재능이 있음을 기억하는 안목과 다양한 사람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 자신과 타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품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글쓴이 : 김혜진
<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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