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세월의 이야기
잠 못 이루는 삼경(三更) 밤에
근심은 찬 비 따라 생겨나네
내일 아침 이내 귀밑머리엔
흰 눈이 몇 가닥 더 내릴까
不寐過三夜불매과삼야
愁從冷雨生수종냉우생
明朝看我鬢명조간아빈
白雪幾添莖백설기첨경
- 정수강(丁壽崗, 1454~1527), 『월헌집(月軒集)』 1권 「한겨울 밤에 빗소리를 듣다[仲冬夜聞雨聲]」
< 해설 >
비는 사시사철 내리지만 ‘겨울비’라고 하면 유독 더 쓸쓸한 감성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그것도 눈이 되기 직전에 가장 차가운 상태로 내리는 비다 보니 맞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더 스산한 느낌을 주기 십상이다. 겨울이면 다들 하늘에서 눈이라도 내리기를 바랄 터인데, 날씨가 좀 풀린 겨울날에 냉랭하게 내리는 찬 비는 마치 부르지 않은 불청객 같기도 하고 몰려올 추위를 예고하는 소식꾼같기도 하다.
이번 겨울도 유독 눈 소식보다는 비 소식이 많다. 어쩌면 찬 비는 건조한 겨울 대지를 적셔 화마(火魔)를 막아주는 고마운 비일런지도 모르겠다. 온 인류가 호주 땅에 겨울비가 쏟아지길 바라는 때라서 더욱 그럴까. 하지만 그래도 막상 닥쳐오는 겨울비를 만나면 ‘쓸쓸함’ ‘처량함’이란 단어들이 먼저 곁을 스쳐 지나가게 마련이다.
위 시의 저자인 정수강(丁壽崗)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500년 전 사람에게도 겨울에 내리는 찬 비는 지금과 다름없이 쓸쓸하고 처량했다. 삼경(三更)은 현대 시각으로 치면 밤 11시에서 1시 사이로, 전기가 일상화된 요즘 사람들에겐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흐릿한 등잔불 하나에 의지해 밤을 지새우곤 했던 옛날 사람들에겐 한참이나 야밤이다. 하지만 창밖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찬 비의 음산함 때문인지 저자는 미처 잠들지 못했고, 머릿속 한 켠에는 한 가닥 근심만 생겨나고 있다.
3, 4구를 살펴보면 저자가 과연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이제 곧 노년을 바라보는 처지에, 이 차가운 겨울밤 지내고 나면 흰머리가 몇 가닥이나 더 늘었을지... 덧없이 구름처럼 흐르는 세월에 묻혀 이제는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인생에 대한 회한이 쌀쌀한 겨울밤 차가운 비를 타고 심상(心想)을 두드린다. 더욱이 밖에는 눈 대신 비가 내리는데, 역설적으로 저자의 머리에는 오지 않는 눈이 대신 내릴 판이니 말이다.
예전에 시를 배울 적에 시인들이 허구헌 날 읊어대는 귀밑머리 희어졌느니, 머리에 흰 눈이 내렸느니 하는 소리들을 그저 심드렁하게 흘려듣곤 했었다. 그것도 연보(年譜)를 따져 보면 이제 겨우 마흔 문턱에 접어들었을 시인이 저리도 흰 머리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과장도 좀 적당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과장이 아닌 진솔한 신세 한탄이었음을 그리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마흔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필자의 머리에도 하루가 다르게 흰 눈이 쌓이는 것을 거울로 볼 때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머리가 왜 그래?”라며 짐짓 놀란 눈으로 바라볼 때마다, 그 마흔 문턱의 시인들이 과연 이런 심정으로 시를 썼겠구나 여실히 느끼면서, 예전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워지곤 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다. 문득 필자가 한창 어렸을 때 TV에서 간혹 틀어주던 ‘2020 우주의 원더키디’란 만화를 재밌게 봤던 추억이 떠오른다. 벌써 30년쯤 된 옛날 일이다. 그때 초등학생 소년에게 2020년이란 해는 결코 실감이 가지 않는 머나먼 미래였다. 그때가 되면 저 만화 속 이야기처럼 인류가 우주를 누비고 외계인을 만나고 레이저 총을 쏘고 그럴까라는 막연한 상상만 했을 뿐.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어도 아직 인류는 우주를 누비지 못하고 외계인도 못 만났고 레이저로는 악당이 아닌 점이나 퇴치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백 투 더 퓨처2〉에서 시간 여행을 하던 2015년도 벌써 지나갔지만, 아직 타임머신은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존 코너가 기계와 싸우던 2029년도 이제 채 10년이 안 남았지만,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인류는 지금처럼 기계와 바둑 싸움이나 할 것 같다. 이처럼 많은 것이 변해버릴 것만 같았던 먼 미래는 막상 닥쳐오면 별 것 아닌 듯한데, 흐르는 세월 속에 30년 전의 소년만 어느새 희끗한 중년으로 변해버렸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흘러가는 세월은 마치 구렁으로 들어가는 뱀과 같아 미처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그 뱀처럼, 앞으로도 세월은 계속 흐르고 흘러 어느새 30년 후에는 바야흐로 2050년도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과연 외계인을 만날지, 타임머신이 생길지, 기계와 인간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일지,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으리라. 소년은 동심을 잃은 장년이 되고 청년은 청춘을 빼앗긴 노년이 되리란 것을. 하지만 야속하게 흐르는 세월에게 그저 잃고 빼앗기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소중한 추억들, 귀중한 인연(因緣)들을 빼앗긴 청춘의 대가로 다들 한 아름씩 안고 있을 테니 말이다.
50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 30년 후에도 겨울비는 여전히 차가울 테고, 그 비를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쓸쓸한 심정도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 미래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쓸쓸한 겨울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쩌면 세월이 앗아간 것에 대한 상실감에 마음이 좀 더 쌀쌀해질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세월이 주고 간 것에 대한 고마움에 마음이 좀 더 훈훈해질지도 모르겠다.
글쓴이허윤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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