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대지의 끝, 지평선으로 난 길 위에서

백광욱 2019. 11. 6. 08:42




대지의 끝, 지평선으 난 길 위에서


천하 선비 하나같이 근심 안고 살거늘
수곡은 어찌하여 홀로 즐거워하는가
세상 밖 자연과는 한가히 연 맺으면서
세간엔 누대 하나 세울 땅이 없었구려
공무를 마치고서 잠시 여가 날 때마다
도처에 호수와 산 안팎으로 펼쳐졌네
모름지기 알아야지 주자가 호기 발한 게
탁주 두세 잔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걸

 

滿天下士多憂者 만천하사다우자
樹谷何爲獨樂哉 수곡하위독락재
物外有緣閒水竹 물외유연한수죽
世間無地起樓臺 세간무지기루대
暫時朱墨優餘了 잠시주묵우여료
到處湖山表裏開 도처호산표리개
須識晦翁豪氣發 수식회옹호기발
非關濁酒二三杯 비관탁주이삼배

 

-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송자대전(宋子大全)』 권4 「수곡(樹谷)의 유산시(遊山詩)에 추후 차운하다」


해설

   위의 시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수곡 조세환(趙世煥, 1615~1683)의 인간됨에 대해 쓴 시이다. 내용에서 보듯, 수곡은 낙천적이고, 가난하되 청렴하며, 자주 어디론가 떠나는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전도양양한 청년이었으나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듣고는 과감히 벼슬에 대한 뜻을 접는다. 23년 동안 고향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때로는 산천을 떠돌며 여행하다가 42세가 되어서야 대과에 장원급제하며 벼슬길에 오른다.

 

   우암은 위의 시뿐만 아니라 수곡에 대한 시를 몇 편 더 썼는데, 거기에도 그에 대한 한결같은 존모의 염이 담겨 있다. 수사(修辭)를 살려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그는 형산(衡山)의 운무를 개게 한 한유(韓愈)의 호방한 기운과 900리 호수 운몽택(雲夢澤)보다 더 넓은 가슴을 지녔다. 자유자재로 시를 짓는 타고난 시인이며, 누구와도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여유로운 사람이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탄식하는 소리 한 마디 내는 법 없고, 풍광 속을 노닌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드넓은 대지를 가슴에 품은 듯 느껴지곤 한다.”는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묘사치고는 더할 수 없는 찬탄이다.

 

    『목민심서』에도 그의 인간됨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동래 부사로 재직할 때, 그는 자신의 녹봉을 모조리 털어 백성들의 세금을 대납해 주었는가 하면, 숙종이 그의 가난을 걱정하여 금(金)을 하사하자, 그것마저도 임진왜란 때 순절한 송상현(宋象賢)의 사당을 보수하는 데 썼고, 그때 함께 순절한 관노 석매(石邁)의 자손을 양민으로 만들기 위한 대속(代贖) 비용으로 썼다고 한다. ‘세간에 누대 하나 세울 땅이 없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이런 청빈과 넉넉한 품을 지니게 되었을까? 이 시의 마지막 연에 그 답이 숨어 있다. 주자(朱子)의 시 <술에 취해 축융봉을 내려오며[醉下祝融峯]>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만리에 장풍을 타고 오니 깊은 계곡 층층구름 가슴이 탁 트이네. 탁주 세 잔에 호기가 발동하여 낭랑히 시 읊으며 나는 듯 산을 내려오네.[我來萬里駕長風, 絕壑層雲許盪胸. 濁酒三杯豪氣發, 朗吟飛下祝融峯.]”라는 대목이다. 주자는 탁주 세 잔에 호기가 발동했다고 했지만, 우암이 보기에 그 흥취는 술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것은 바로 공자(孔子)의 이른바 ‘인자요산(仁者樂山)’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산에는 우뚝 봉우리가 솟아 있고 솟은 높이만큼 계곡의 품은 깊다. 산은 그 품으로 초목과 금수를 보듬어 생장시키지만 이를 결코 자기 소유로 여기지 않으며, 언제든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인자(仁者)는 바로 그러한 산의 모습을 닮고자 끝없는 자기 성찰과 구도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마침내 안으로 청정과 화평과 중정을 지니게 되고 밖으로 탐냄과 성냄과 미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수곡이 걸었던 굽이굽이 휘돈 수많은 산길과 오랜 방랑길이, 그 길 위에서의 고난과 위기가, 그 뒤에 왔을 충만한 여유와 깨달음의 여정들이 그를 인자로 만들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 그림 제공 : 미호

   

우리는 누구나 길 위에 선다. 벗어나기 위해, 잊기 위해, 내려놓고 비우기 위해, 혹은 뭔가를 얻기 위해, 소진된 에너지의 충전과 힐링을 위해, 결정과 전환과 시작을 위해, 만남 또는 이별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떠나온 거리만큼 일상은 저 멀리로 물러나고, 등이 휠 것 같던 현실은 이상하게도 무게를 잃는다. 위대한 자연의 위용 앞에서 집착은 무장 해제되고 억눌려 있던 자아는 조금씩 해방된다. 잃어버렸던 웃음도 되찾으면서 원초의 순수성마저 회복한다. 특히 자연 속의 길을 끝없이 걷다보면 육체의 고통은 서서히 극복되고 고요와 열정의 호르몬이 샘솟으면서 갈수록 영혼과 감성은 고양된다.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통해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무의식의 힘, ‘코나투스(conatus)’의 증가를 확인한다. ‘아, 이것이었구나!’ ‘그런 거였어!’ 여행의 끝에서 작은 깨달음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를 때, 그리고 다시 변화의 희망과 새로운 시작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 비로소 여행은 완성된다.


   그렇다고 꼭 먼 길을 떠나야만 의미 있는 여행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늘 가까이 산과 들이 있고 강과 내가 있다. 사진찍는 지인 추교석은 틈만 나면 집 가까이 있는 형산강 바닥을 훑고 다니면서 별 향기도 없이 널려 있는 쑥부쟁이들을 찍어댄다. 풀꽃들이 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모해 가는 그 미묘한 차이를 담아낸다.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여도 물끄러미 바라보면 꽃잎 하나하나가 다르고 누구와 이웃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오늘은 또 어제와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 사진 제공 : 추교석



   이산하 시인의 <쇠똥구리>란 시에 있는 “소똥을 탁구공만하게 똘똘 뭉쳐 뒷발로 굴리며 간다. 처음 보니 귀엽고 다시 보니, 장엄하다.”는 구절처럼, 하찮게 보이는 미물에게서도 장엄한 노동의 의미를 깨닫듯, 우리 주변의 익숙한 생명과 사람에게도 눈과 귀와 가슴을 기울여 그 속에서 특별함과 색다름과 잠재성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욕망의 탈주와 연대의 동력으로 삼을 때, 반복되던 답답한 일상도 설레오는 깨달음의 길 위에 선 여행이 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호모 비아토르(Homoviator)’ 즉, 떠도는 사람들이고, 이 세상에 여행 온 인간이며, 시간의 지평선으로 난 길로 가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길의 여행가방 안에 후회와 원망과 상처로 채울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변화의 기쁨과 사랑과 가슴 벅찬 순간들로 채워가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글쓴이이기찬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교육 > 고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되면 이름 탓  (0) 2019.11.14
문 틈의 달  (0) 2019.11.11
돌이켜보는 사랑  (0) 2019.10.16
부모님을 기억하는 방법  (0) 2019.10.08
가을밤의 단상   (0) 201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