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잘못이 있거든 뉘우치지 않아서는 안되며, 뉘우쳤거든 가슴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항상 자신을 부족하게 여긴다면 계속 위축될 것이니,
어찌 깨끗이 씻어내어 다시 시작하는 것만 하겠는가?
有過不可不悔 悔不可留着胸中 蓋常自不慊 則一向餒矣 曷若洗濯而更始乎
유과불가불회 회불가류착흉중 개상자불겸 즉일향뇌의 갈약세탁이갱시호
- 민우수(閔遇洙, 1694~1756), 『정암집(貞菴集)』 권15 「잡지(雜識)」
< 해설 >
민우수는 29세(1722년)부터 독서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나 일상의 단상들을 적어 이후 하나의 잡록으로 엮었다. 잡록 안에 ‘일기(日記)’라고 표시된 글들이 있다. 위 구절은 그중 하나다.
유가(儒家)의 글에는 유독 반성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스스로 인격을 수양하는 일[修己]이 유자(儒者)의 본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성은 남에게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도 유자들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했다. 『논어』에서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고 했고, 『맹자』에서도 “행하여도 얻지 못하거든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구할 것이다(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라고 했다.
그러나 민우수는 반성 이후의 마음가짐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잘못을 뉘우쳤으면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라고 한다. 과거에 얽매이면 스스로 늘 부족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하여 민우수는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늘 위축될 바에야 차라리 다 씻어내어 다시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는 이 말을 하기 전, 40세(1733년)에 선친의 묘소에 참배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선친이 자신에게 성취한 것을 묻는다면 아무 것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나간 날은 잊고, 의롭지 않은 마음과 행동을 경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민우수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보다 그 이후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과거를 복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잘못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끝났으면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면 과거의 나를 용서하자. 그것은 곧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글쓴이이미진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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