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태종(太宗)의 은택(恩澤)에 젖어

백광욱 2019. 3. 21. 06:04




태종(太宗)의 은택(恩澤)에 젖어


태종우(太宗雨)

 

돌아가신 뒤에도 은택 흐르니
아아 선왕을 잊을 수 없도다
해마다 이날에는 비가 내리니
방울마다 성왕의 은덕이고말고
누렇게 시든 잎들 씻어 주고
말라 죽는 혼을 소생케 하네
새벽에 나가 들판을 바라보니
온 세상에 기쁜 기운 가득하구나

 

沒世猶流澤  몰세유유택
於戲不可諼  오희불가훤
年年是日雨  연년시일우
點點聖王恩  점점성왕은
淨洗芸黃*色 정세운황색
昭蘇暍死魂  소소갈사혼
星言**觀四野성언관사야
喜氣滿乾坤   희기만건곤

 

-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우복집』 권2 「올해는 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여름철에 접어들며 더 심해졌는데, 5월 10일에야 새벽부터 저녁까지 단비가 내렸다. 이는 바로 세속에서 말하는 태종우(太宗雨)이다. 느낌이 일어 시를 지어 기쁨을 적는다.[今年自春不雨, 至夏愈甚, 五月十日, 有甘澍自晨至夜. 此國諺所稱太宗雨也, 有感而作, 志喜.]」


< 해설 >

음력 5월은 여름이 깊어가는 때다. 농촌에서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망종(芒種)과도 얼추 시기가 겹치는 이때 농부들은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한다.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시기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그래서 농부들에게 5월에 내리는 비는 생명과도 같다. 시에서는 5월 10일에 비가 내린 일을 기리고 있는데 정경세가 제목에서 말한 올해는 1614년(광해군6)이다.

 

   1422년(세종4) 초여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가뭄에 국왕은 거의 모든 산천에 두루 기우제를 올렸는데도 효험이 없었다. 세종에게 양위하고 병석에 누워 있던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이를 깊이 근심하였다. 그래서 하늘에 올라가 상제(上帝)께 고하여 단비를 내리게 하겠다고까지 하였는데 5월 10일 결국 승하하셨다. 그리고 잠시 뒤 경기 일원에 큰비가 내려 그해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백성을 걱정하던 태종의 정성이 하늘을 정말로 감동시켜서였을까? 이후로 매년 5월 10일이 되면 으레 비가 내렸고 백성들은 이 비에 태종우라는 이름을 붙여 태종을 잊지 않았다.

 

   정경세뿐만 아니라 태종우를 소재로 시문을 남긴 문인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오윤겸(吳允謙, 1559~1636) 역시 「태종우(太宗雨)」란 제목의 시를 남기고 있다.

 

聖主乘龍二百年(성주승룡이백년) 성군께서 승하한 지 어언 이백 년
一言憑几信如天(일언빙궤신여천) 침석의 유명(遺命)이 하늘처럼 미더워라
至今五月初旬日(지금오월초순일) 지금에 이르도록 5월 10일만 되면
每沛甘霖潤旱田(매패감림윤한전) 늘 흡족하게 메마른 땅 적셔 주네
- 『추탄집(楸灘集)』 권1, 「태종우(太宗雨)」


 

   이 시는 오윤겸의 증손 오수채(吳遂采)와 관련하여 사연이 있다. 1739년(영조15)에 가뭄이 오래 이어져 5월 10일에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이후로 계속 비가 내리지 않아 영조가 매우 걱정하였다. 그러자 5월 14일 소대(召對)에서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강독하다가 시독관(侍讀官) 오수채가 다음과 같이 영조에게 아뢰었다.

 

   신이 감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이달 10일에 내린 비가 그나마 쟁기질하는 깊이까지는 내렸지만 오랜 가뭄 뒤에 내린 터라 흡족하지 않습니다. 그날은 바로 태종대왕의 기일로 해마다 이날에 비가 내리곤 하여 민간의 어리석은 백성들조차 태종의 마지막 유명(遺命)이 지성(至誠)으로 백성을 위하는 뜻에서 나왔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태종우(太宗雨)라고 이 비를 부릅니다. 신의 증조부 오윤겸의 문집 안에 태종의 마지막 유명을 수록하고 또 몇 구절 영탄(詠歎)한 시가 있습니다.


 

   기우제를 지내고 이틀 뒤인 이날도 비가 오지 않아 영조는 태종처럼 깊은 근심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앞서 1월 말에 2백 년 동안 거행하지 않았던 친경례(親耕禮)까지 하는 등 풍년을 위해 각별히 힘쓰던 해였는데 가뭄이 계속되니 더 안타깝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영조는 오수채의 말을 듣고 곧장 주서(注書)에게 『추탄집(楸灘集)』을 가져 오게 하여 시를 읽고 선왕을 사모하는 마음을 토로하였다.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사초(寄齋史草)』,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에 수록되고 민간에서 설화처럼 전해 내려오던 태종의 고사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확실치 않다. 『세종실록』에는 1422년 4월 7일에 경상도에 눈이 내리고 20일에는 거센 바람과 천둥번개에 우박까지 내렸다는 기록은 있어도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없다. 게다가 그해 5월 10일에 비가 내렸다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태종의 승하 이후 2백 년이 다 되도록 5월 10일에 비가 안 온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신령스러운 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5월에 비를 간절히 염원하였던 백성들이 5월 10일에 으레 내리던 비를 신성화하여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태종우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태조우(太祖雨), 효종우(孝宗雨)라는 말까지 전해오는 것을 보면 비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해가 된다. 참고로 태조우는 태조의 기일인 5월 24일, 효종우는 효종의 기일인 5월 4일에 내리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올해도 음력 5월 10일에 태종께서 단비를 주실 것인가?

 

 

*운황(芸黃) : 『시경』 「초지화(苕之華)」에 “능초의 꽃이여 곱게 누렇기도 하네.[苕之華,芸其黃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초목(草木)이 누렇게 시든 모양을 말한다.


 

**성언(星言) : 『시경』 「정지방중(定之方中)」에 “단비가 이미 내렸거늘, 수레 모는 사람에게 명하여, 새벽녘에 일어나 멍에를 메게 하고, 상전에 나아가 멈추었네.[靈雨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별을 보고 새벽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글쓴이변구일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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