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삶/음악이 있는 방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백광욱 2023. 9. 7. 00:04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타는 듯한 햇살아래 지독히도 뜨거웠던 여름, 몇 번의 비가 내렸고 몇 번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벗어나고만 싶었던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 줄 선선한 바람, 그리고 기다려왔던 가을. 낙엽을 머금은 종이는 이제 한 해 두 해 흘러 낡아갈 것이고, 우리의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갈 것입니다. 세월을 보내는, 혹은 버티는 모든 청춘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을날의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잊혀진 꿈에 대하여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비가 내리면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밀려 잠시 잊었던 꿈을 다시 상기시키는 노래가 있습니다. 차오른 달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시간동안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가을의 기억. 유난히 혹독했던 해의 흐린 가을의 낡은 꿈과 낡은 상처를 하나씩 세상에 꺼내어 놓은 듯한 노랫말.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아련한 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故김광석의 목소리로 익숙한 이 곡은 가수 ‘동물원’의 2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곡은 동물원의 리더인 김창기, 노래는 당시 보컬이었던 김광석이 불렀던 곡이죠. 김창기가 대학시절 시험을 앞둔 전날 밤, 후에 김광석의 솔로음반에 실릴 곡 하나와 함께 만들어냈다는 일화가 있는데요. 동물원의 곡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곡으로, 후반부에 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는 잊혀져가는 꿈에 대한 절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풋풋했던 가을의 기억
<가을 우체국 앞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 1집에 실린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가사는, 마치 갓 스물 정도 됐을 법한 순수한 청년의 때 묻지 않은 세상에 대한 시선과 궁금증처럼 느껴집니다. 어린 청년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 세상의 풍파를 맞고 변하겠지만, 그 시절 가을날에 했던 세상에 대한 고민과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청년의 가슴 한 켠에 아련하게 남아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대가 바람처럼 밀려오다
<바람, 그대>

 

바람이 불어서 눈을 감았더니 내게로 달려오네 가을이
젖은 머리로 넌 어디를 다니나 코끝엔 익숙한 그대 머리 향기
그대의 손 따뜻했던 그 온도와 그대의 얼굴
단숨에 또 나를 헝클어버린 내 가을이
그대가 그리워 다시 가을인 걸 알았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성시경의 숨겨진 명곡 <바람, 그대>는 우연히 맞은 가을 바람에 사랑했던 이의 기억이 실려 오는 감정을 시처럼 표현한 곡입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로 유명한 하림이 작곡한 곡으로, 성시경의 꿈꾸는 듯한 목소리와 몽환적인 분위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어디론가 바람처럼 실려 갈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잊어야만 했던 어떤 사람 그리고 기억. 가을이 와서야 밀려오는 감정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화자에게 잠시 감정이입을 하고나면, 어딘가 후련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가을에 잊혀졌던 꿈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서툴렀던 청춘과 가을의 기억. 먼 훗날 우리를 그 때 그 시절 풋풋했던 가을날과 이어줄 음악과 함께, 우리의 반짝이던 청춘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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