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내리막에 있었다
내리막 우리 집
우리 집은 내리막에 있었다
엄마는 우리 집이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작고 초라한 연립 주택이어도
좋은 집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한겨울 눈이 내리면
대형 마트 배달 트럭도 올라오지 않는 곳
친구들이 가끔
아주 가끔 집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너는 겨울에 눈썰매장 안 가도 되겠다고
학교 가는 길이 내리막이라서
늦게 일어나도 빨리 갈 수 있겠다고
재미로 하던 말에도 상처받던 날들
이웃 어른들이 오르막에 있어서 수해는 안 입겠다고
언덕 위의 집이 좋은 집이라고 다독여 주어도
내리막에 지은 집만 같던 우리 집
마음속으로 아무리 강한 척해 보아도
올려다보면 올려다볼수록 내리막으로만 보이는
집으로 가는 길
졸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집 앞
언덕길을 다 올라
집 앞에 서 보니 가파른 내리막에서도
어디로 흘러가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집이 다르게 보였다
나는 낡은 가방을 메고 두꺼운 졸업 앨범을 들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집 앞에 섰다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우리 집
내리막 우리 집은
집 앞의 내리막을
끌어다가 하늘과 잇는 곳에 서 있었다.
-김학중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중에서
< 출처 : 행복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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