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5)
< 번역문 >
봉양할 때 그 분들의 기거와 음식을 살펴보면 금년이 작년만 못하고 오늘이 어제만 못하기에 쉽게 흘러가는 세월을 탄식하고 붙잡기 어려운 만년을 애석해했을 것이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극한 정에서 우러나와 절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물러나 자신의 당에 ‘희구’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니, 항상 눈길을 두면서 한 달에 30일, 하루에 24시간 동안 한 생각도 기쁨이 아님이 없고 한 생각도 두려움이 아님이 없고자 했을 것입니다. 정성과 효가 지극하지 않다면 누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성인인 공자와 현인인 맹자·주자의 경우에는 효가 지극하지 않은 게 아니고 정성이 감응하기 어려운 게 아닌데 끝내 하늘에서 얻지 못한 건 이치의 변칙적인 것입니다. 그대의 부친은 자신을 다하여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경우이니 이치의 정상적인 것입니다. 성현은 변칙을 만났는데 우리만 정상을 만났으니 하늘이 편애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 것은 가당하지 않습니다. 효와 정성이 도탑지 않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될 수 있겠습니까.”
< 원문 >
至於奉養之際, 察其起居飮食, 今年不如去年, 今日不如昨日, 嘅流年之易邁, 惜頹景之難縶, 警懼之心, 發於至情, 而自有不能已者. 於是退而扁乎堂, 欲其常目在之, 一月而三十日, 一日而十二時, 無一念而非喜, 無一念而非懼. 非誠孝之純, 孰能至於斯哉? 彼一聖二賢者, 其孝非不純也, 其誠非難感也, 而終不得於天者, 理之變也. 子之大人, 盡於己而獲佑於天者, 其常也. 聖賢値其變, 而吾獨値其常, 不謂天之不偏厚不可也. 非誠孝之篤, 曷克臻於斯哉?
-홍여하(洪汝河, 1620~1674), 『목재집(木齋集)』 6권, 「희구당기(喜懼堂記)」
위는 홍여하가 박호언(朴浩彦)에게 지어준 글이다. 이 글을 짓기 두 해 전인 1660년(현종1) 박호언은 당시 홍여하가 유배 갔던 충청도 황간(黃澗)으로 찾아가, 자신이 연로한 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정과, 그 분들이 장수하여 기쁜[喜] 한편으로 노쇠하여 두려운[懼] 감정을 말하고, 그 글자를 이어 ‘희구당’이라는 당호를 지었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실질을 써달라고 청한다. 박호언의 청은, 2년 후 그 아들인 박연로(朴廷老)를 저자에게 보내어 재차 청하게 한 후에야 이루어진다.
‘희구’란 『논어』 「이인(里仁)」의 “부모의 연세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이다.” 라는 공자의 말을 축약한 표현이다. 박호언의 호도 이 말에서 따왔고, 그 호에 대한 저자의 논설도 이 말을 상정해두고 시작한다.
부모가 모두 생존하여 장수하는 것은 자식의 지극한 기쁨으로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치로 보았을 때 효성을 다하면 이를 얻을 수 있어야 정상이지만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공자가 이에 해당한다. 공자는 두 살 때 부친을 여의었으니 모친이 고령이 되었을 때 더욱 기쁘면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변칙은 맹자도 해당된다. 그 또한 부친을 일찍 여의었기에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중 ‘부모가 모두 생존한 것[父母俱存]’ 을 첫 번째로 꼽았으리라. 주자 역시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의 연세가 높았기에 ‘희구’의 감정을 술회한 공자의 위 말에 대해, ‘자식의 시일이 지나가는 것을 아까워하는 정성 때문에 저절로 그만둘 수 없다.’ 라고 풀이하지 않았을까.
한편 박호언의 부모는 모두 팔순을 넘긴 나이에 강녕하고, 또 훌륭한 자손이 많다. 수명과 복록을 모두 가졌으니, 이 나라 안 어느 명문가를 꼽아 보아도 이러한 집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떠한 부귀영화도 그 기쁨과 견줄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노인의 일이란 한 치 앞도 장담하기 힘들지 않던가. 단 한 걸음을 내딛으실 때도, 단 한 숟갈을 뜨실 때에도 살피고 살펴야 한다. 절서의 변동과 날씨의 변화에는 또 어떠한가. 참으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 과거와 현재의 기쁨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기쁨이 있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다. 이 때문에 박호언은 ‘희구’라는 당호로 자신을 다잡고 북돋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효는 당위적인 관념이기에 ‘희구’라는 말은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을 자부하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름은 존재를 표방하는 기제이므로 그 이름이 붙어 있는 한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이름과 실제가 부합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성찰과 타인의 관찰이 함께 이루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다지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효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세상 앞에 나서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효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과 정성, 인내와 희생은 어느 한쪽의 생이 다할 때까지 끝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박호언은 저자의 붓을 빌어 자신을 세상에 알렸고, 저자는 그 조부모의 장수를 축원하고 후손들의 효성을 드러냄으로써 그를 응원했다.
우리나라 1인 가구 인구수가 전체 인구의 3할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제 대가족이 중심이었던 옛 시대의 관념은 유효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시대와 사람이 변했으니 사회상이 달라지는 게 이상할 건 없다. 또한 사람이 사람에게서 태어나지 않는 것도, 그 체온이 차갑게 식는 것도 아닐 게다. 다만 삶의 형태가 우리가 우리 서로를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다. 더욱이 유래 없는 전염병의 유행 탓에 어느 때보다도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간절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호라는 이름의 형태도 효라는 관념도 희미해져가는 이때 옛 효자의 이름이 어떤 의미가 되면 좋겠다.
글쓴이 : 강만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