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시장 구경
< 번역문 >
현판마다 꼭꼭 “정가로 판매합니다.”, “물건 좋고 값은 쌉니다.”, “단골고객을 속이지 않습니다.”, “어린애도 영감도 속을 일 없습니다.”라는 따위 말을 써서 전포 밖에 세워놓았다. 현판을 세우지 못한 집은 하다못해 판자 위에라도 써서 처마 끝에 매달았다가 밤이면 거두어들인다.
또 널판지 위에 파는 물건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전포 앞에 걸어둔 곳도 있다. 대개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편한 것은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그리기에 불편한 것은 글자로 쓴 것이다. 담뱃대, 부채, 가죽장화 등속은 별도로 엄청 큰 모조품을 만들어 건물 밖에 걸어두었다.
행상들이 지나가자 나귀가 대열을 이루고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혀 온 길에 가득하고 들녘을 가릴 판이었다. 곡식을 담는 포대는 모두 면으로 만든 포대를 썼다. 그 외에 과일 종류는 모두 광주리나 바구니 등에 담아놓았다. 또 옹기나 도자기 등을 파는 행상들이 외발 바퀴가 달린 작은 수레를 손으로 밀면서 돌아다니며 입으로 외쳐대었다. 돼지고지, 양고기, 전병 등속같은 것들도 작은 외발 수레를 사용하여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채소, 과일, 기름, 사탕 등을 파는 행상은 반드시 긴 장대를 이용하여 메고 다니는데, 나무의 양쪽 끝에 새끼줄을 묶어 판매하는 물건을 매어달았다. 새끼줄을 반드시 길게 늘어뜨려 어깨와 목 사이에 걸머지는데, 나무결이 유연하여 걷는 대로 낭창낭창 흔들리니 마치 전혀 힘이 들지 않는 듯하다.
< 원문 >
標榜必書以言不二價貨眞價實不悞主顧童叟無欺等語 而竪之鋪外 竪之不得者 必於木板上書之懸於簷端 夜則收納 又於木板上 畵其所賣之物 懸之鋪前 蓋便於畵者畵之 不便於畵者書之 至如煙杯扇子靴襪等屬 則另以絶大樣造出 掛之宇外
衆商過巨 驢騾成列 車轂相擊 滿途蔽野 穀包皆用棉布帒 其他果實之類 皆盛以筐籠之屬焉 又如甕磁等行商者 用獨輪小車 以手推驅 以口號賣 至於猪羊肉餠餌之屬 亦用小車而行賣 菜果油糖等行賣者 必用長木而擔荷之 繫索於木之兩端 懸結所賣之物 索必纚纚 擔在肩項之間 而木理柔裊 隨步搖蕩 若不費力
- 박제인(朴濟寅, 1818~1884), 『연행일기(燕行日記)』중에서
여행에는 여러 가지 목적과 형태가 존재한다. 문학과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도 있고, 연구를 목적으로 오지를 헤매는 탐험도 있고, 참회나 경배의 마음으로 성지를 도는 순례도 있다. 특수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흥분을 만끽하는 것이 대개 여행의 매력이다. 낯선 풍물을 구경하고 재미난 음식을 맛보며 여행 오기를 잘 했다는 행복감을 새삼 느끼기도 하는데, 이러한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딜까. 나는 단연 외국 여행에서 만나는 시장 구경이라고 생각한다.
논밭과 산을 빼면 도무지 볼 것이라곤 없는 깡촌에서 자란 촌놈들이 으레 그렇듯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유난히 시장 구경을 좋아했다. 장날만 되면 어머니를 따라 읍내에 가고 싶어 생떼를 쓰곤 하다가 장터에 돌아다니다가는 버릇 버린다는 어른들의 호된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어쩌다 운 좋게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는 날이면 거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흥분했는데,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 경험했던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탓도 있겠지만 나는 외국 여행을 나갈 때도 시장 구경을 유난히 좋아하여 단연 여행의 백미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에 대해 나는 한때 ‘동적(動的)인 은둔’이라 정의해본 적이 있다. 복잡하게 얽혀진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한시적이나마 단절하고 떠난다는 점, 그 어떠한 현실 사회의 책임에 대해서도 잠시 벗어나 도피한다는 점, 방외인이라는 익명의 존재로서 지상의 세계 위를 부유한다는 점, 그리하여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 때문에 정신이 가장 고양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여행자는 은둔자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그런데 이방인으로 부유하던 여행자가 잠시나마 여행지의 인간들과 섞여 비린내 나는 그들의 삶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 있다면 현지의 시장을 구경할 때라고 여겨진다. 이것이 내가 해외 여행에서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박제인은 43세 되던 1860년 봄에 부사로서 사행길에 오른다. 청나라 함풍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절이었다. 2월 30일에 서울을 떠나 8월 17일에 홍제원에 도착하였으니 거의 6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이때의 연행 일정을 『연행일기』에 자세히 담았다.
명나라에서 조선 선비들의 유학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이래 우리나라 사람이 국외로 나가는 기회는 중국과 일본으로 사행을 떠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태어나서 자기 고을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시대에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경험이다. 때문에 관료로서 책임 의식의 발로이든 일생의 특별한 경험을 작품으로 남기려는 작가의식의 발로든 사행을 다녀온 많은 문인들이 대부분 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시문으로 남겼다.
초기의 연행록에는 여행자로서 느끼는 흥분이나 호기심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외교관으로서의 책무의식이나 향수가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후임 사절을 위한 필수 매뉴얼 작성이라는 목적의식이 간간이 비쳐졌다. 여행자의 시각으로 연행을 기록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18세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연행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서서는 연로의 풍물 자체에 호기심을 가지고 마치 오늘날 여행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듯이 작가의 시선에 따라 있는 보이는 대로 기록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박제인의 『연행일기』가 대표적이다.
공무의 여가에 박제인은 시장 구경을 갔다. 외교수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잠시 여행자로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것이다. 박제인이 담아놓은 북경 시장의 모습에는 국가 관료로서의 책무감이나 지식인으로서의 학구적 의욕 또는 청나라를 바라보는 상투적 역사 인식이 없다. 북경의 낯선 시장 풍경을 어린아이 같은 시선으로 한껏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일체의 사회적 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여행을 즐기는 시간.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왁자한 외국 시장의 생동하는 소리가 지금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글쓴이 : 이규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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