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센사람
옳은 데 처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확고하게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니
굳센 사람이라야 제대로 할 수 있네
處是非難 確於是爲難 剛者得之
처시비난 확어시위난 강자득지
- 허목(許穆, 1595~1682), 『기언(記言)』 권9 「어시재기(於是齋記)」
< 해설 >
위 구절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지은 〈어시재기(於是齋記)〉의 일부로, 미수가 66세이던 1660년(현종1) 겨울 무렵에 지은 글입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이 즉위하면서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제를 두고 기해예송(己亥禮訟)이 벌어지자 남인인 미수는 효종의 왕통을 우선시하여 3년복 채택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송의 결과, 서인이 주장한 1년복이 채택되고 이듬해 9월 미수는 외직인 삼척부사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담양도호부사(潭陽都護府使) 임유후(任有後)가 광진(廣津)에 집을 지어 ‘어시재’라고 명명하고 미수에게 기문과 편액을 지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임유후는 선영을 지척에 둔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기를 원했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옳은 것을 행하고자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른 것을 행하는 일이 많아 시비가 전도된 것을 경계하고자 하였습니다. 미수 역시 임유후의 뜻에 동의를 표하고 이 글을 지은 것입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사에 저마다의 사정이 개입하고 이해까지 얽히고설키고 보면 시비가 전도되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복잡한 심사를 걷어 내고 직관적인 양심의 판단에 맡겨보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실 세상 사람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한다고 말하면서도 옳은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릇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저마다의 양심과 신념이 있음에도 굳센 의지로 옳은 길을 확고하게 지켜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수도 옳은 길을 지켜나가는 관건은 시비를 분별하는 명철함이 아니라 의지를 지켜나가는 굳건함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논어》 <공야장>에, 어떤 이가 신정(申棖)을 두고 굳센 사람이라고 일컫자 공자는 “신정은 욕심이 많으니 어찌 굳셀 수 있겠는가.[棖也慾 焉得剛]”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굳센 사람이라고 하면 한번 정한 목표는 기어코 관철시키고 마는 고집스럽고 드센 사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욕심이 있으면 이해에 따라 의지가 흔들리기 십상일 뿐만 아니라 정한 목표마저도 옳은 길인지 미덥지가 않게 됩니다. 그런즉 진정 굳센 사람이란 올바른 도리를 굳게 지켜서 이해에 따라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요즘 세상에도 자신은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하고 그릇된 일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세상사가 여전히 많은 것은 이성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도 확고부동하게 지켜나가려는 굳센 의지는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쓴이장희성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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