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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리 석주(전남 고흥)

백광욱 2016. 9. 13. 07:52

신호리 석주(新虎里 石柱)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1509

 

이 석당간은 현재 넓은 들판 가운데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탑동' 또는 '탑성동'이라 하고 있다. 또 마을에서 구전되기로는 백제때 '한자사(寒子寺)' 또는 '한사(寒寺)로 불리어져 왔다고 한다.

현재 이 유적은 마을에서 석당간 또는 탑이라 부르고 있다. 맨밑에 방형의 기단석을 앉히고 그 위로 석주를 꽂아 놓은 상태이다. 확인이 불가능하나 기단석에 일정 규모의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맞춰 석주를 끼워넣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켜 놓은 것 같다.

당간(幢竿)은 화강암으로 4각형인데 각 모서리를 죽여서 결국은 8각형인 셈이다. 형태는 하단은 굵고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하후상박형이다. 정상부에는 원형의 보륜(寶輪)에 둥근 보주형(寶珠形) 석재를 얹어 놓았는데 이를 한돌로 처리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에 산재한 석당간은 중앙에 8각의 당간을 세우고 양편에 지주를 세워 당간을 고정시키는 것이 통례인 것에 반해 신호리의 경우는 지주가 없고 8각의 석주만 직립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정상부에는 철제고리 대신 둥근 보륜의 석재로 바뀐 것이 특이하다.

원래 당간의 당이란 깃발을 걸기 위해 세운 간을 말한 것으로 우리나라 고대의 솟대신앙이 불교에 흡수된 것으로 해석하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당간은 대개 사찰 입구에 세우게 되며, 그 기능 역시 벽사적(抗邪的)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신호리 석당간은 현지에 구전된 바에 의하면 사찰 입구나 또는 사찰 경내의 경계표시를 의미하는 당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기법은 지금까지의 통례와는 달리 지주를 생략하고 정상부 또한 특이한 보륜형으로 변화된 현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성시기는 사찰의 폐찰연대 기타 전하는 문헌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는 주변에서 아주 질이 좋은 청자편과 조선초기를 상한하는 옛 기와편들이 수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인용 설명문 출처 : 고흥군청 home page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