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우천리 삼층 석탑 (寶城 牛川里 三層 石塔)
장 소 : 전남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326-17
이 석탑은 이중기단(二重基壇)인듯하나 기단부 하부구 지면에 묻혀있어 결구(結構) 상태를 알 수 없다. 지상에 나타난 양식을 살펴보면 기단면석을 사매판석(四枚板石)으로 하고 각면의 양귀퉁이에 우주(隅柱)를 모각하였으며, 중앙에 탱주를 각출하여 통식을 따랐다. 갑석은 사매판석으로 짰으며 약간 평박한 편으로 하면은 수평인데 부연이 보이고 상면은 탑신을 받는 중앙으로 오르면서 가벼운 경사를 주었고, 각고각형의 3단의 몰딩을 주어 1층 탑신을 받고 있다.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 1석식인데, 1층 탑신은 각면에 양우주를 세웠으며 역시 2∼3층에서도 같은 양식을 보였다. 그러나 탑신의 높이는 2층 내지 3층에서 2층 탑신의 절반도 안되게 하여 급격한 체감율을 보였는데 이는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고준해 보이는 탑이 안정성을 기하려는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하겠다.
옥개석은 하면에 수평을 이루고 층급받침은 4단이다. 상면은 낙수면(落水面) 이 경사를 이루었으며 우동(隅棟)마루가 뚜렷하고 전각에 이르러서는 경미한 반전을 이루었다. 또한 옥개석 상면 중앙에 각형2단 괴임을 표출하였는데 이러한 수법은 2층이나 3층의 옥개석에서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상륜은 노반(露盤)과 복연(伏蓮)을 한 석재가 올려져 있다. 이 석탑은 기단부 하부구조가 지면에 묻혀 정확한 양식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전체적인 탑의 기법이 매우 정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아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옥개석의 낙수면이나 층급받침의 균형을 이룬 분위기에서 느낄수 있겠지만, 특히 낙수면의 밋밋하고 안정된 전각의 급하지 않은 반전에서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이 탑은 당초 지정조사에서 그 조성 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하였으나 최근 이 석탑에 대한 정밀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조성임이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현재 이 탑은 개인소유의 답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않은 벌교 중광사(폐찰)의 말사였다는 구전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확실한 내용은 알 길이 없다. 1972년 1월 29일에 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4월 1일에 국가지정 보물 제943호로 승격되었다.
현 황
지정 번호 : 보물 제943호
지정년월일 : 1988년 4월 1일
소 재 지 :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325
소 유 자 : 국유
규 모 : 총고 4.47m, 기단고 1.05m, 기단폭 2.25m
재 료 : 화강암
시 대 : 통일신라시대
보성 반석리 석불좌상 ( 寶城 盤石里 石佛坐像 )
장 소 : 전남 보성군 복내면 반석리 520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반석리에 있는 불상으로 전체 높이 2.22m, 광배 너비 1.36m이다. 자연석을 배(舟)모양으로 다듬고 그 위에 불상을 새겼다.
둥글고 큰 얼굴은 엄숙하면서도 토속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으며, 머리 뒤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둥근 머리광배가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서 왼쪽 어깨로 올라간 주름은 간략하면서 느슨하다. 큼직한 두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손바닥이 왼손은 밖을, 오른손은 안을 향한 독특한 모습이다.
지방화된 토속적인 불상 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석불좌상은 자연석을 배모양(舟形)으로 다듬어 신광(身光)으로 대신하고 그 위에 불상을 부조(浮彫)한 것이다. 둥글고 큰 얼굴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큼직하고 엄숙하면서 토속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다. 머리 뒤로는 연화문(蓮華紋)을 새긴 원형(圓形) 두광(頭光)이 조각되어 있다. 얼굴에 비해 빈약한 신체는 양감(量感)이 없고 평판적(平板的)인 모습이며 큼직한 두 손은 모두 무릎 아래로 내려 왼손은 외장(外掌), 오른손은 내장(內掌)한 독특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대의(大衣)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가슴에서 왼쪽 어깨로 올라간 의습선(衣褶線)은 간략하면서 이완되었으며 그나마 무릎 부근에서는 적당히 처리한 듯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전체높이 222cm, 광배너비 136cm 규모의 이 불상은 지방화된 토속적 불상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예이다.
보성 봉천리 5층 석탑 ( 寶城 鳳川里 五層石塔 )
장 소 : 전남 보성군 봉천리 767
오동사터에 서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기단은 아래층 기단이 너무 낮아 마치 바닥돌처럼 보인다.윗층 기단의 남쪽면에는 승려의 모습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흥미롭다.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았는데, 1층 몸돌만은 4장의 판판한 돌을 사방으로 세워 구성하였다.각 층의 몸돌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본 뜬 조각이 보이며,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은 눈에 띄게 작아져 있다.
지붕돌은 전체적으로 두터워 보이며, 밑면의 받침을 3층까지는 5단을 유지하다가 4·5층은 4단으로 줄어들어 일정하지 않다.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힘차게 위로 치켜올려져 있어 시원스럽다.절을 창건할 당시에 함께 세워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윗층 기단에서의 독특한 조각이 돋보이고, 전체적으로 좋은 상태로 남아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 탑은 복내면 소재지에서 400~500m 떨어진 봉천리 탑동(塔洞)과 당촌(堂村)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석탑의 구조를 보면 2층기반의 5층석탑으로서 각 부재(部材) 의 조형기법이나 체감율등을 볼때 수준급의 석탑이다. 지대석(地臺石)은 4매석(枚石) 으로 엇물림식 결구(結構)를 하였으며 중앙에 탱주 1주와 각면에 양우주(兩隅柱)를 모각하였다. 하대갑석은 2매판석인데 두꺼운 편이며 상면에 1단의의 고형괴임을 하여 상층기단 을 받았다. 상층기단은 5매판석으로 구성하였는바 정면의 양각인 불상의 배려 때문 인지 전면과 양면은 각 1석이고 후면은 중앙에 탱주를 중심으로 하여 2매로 구성하고 5매로 결구 하였다. 정면의 불상은 조형광배에 입상인 부조로 되었으며 머리가 민머리인 점으로 보아 지장보살이 아닌가 한다. 상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부상이 있고 상면에는 1단의 각형괴임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로 올라와서는 3층이상에서부터 탑신과 옥개석이 교란되어 있는데 누군가 임의로 손댄것으로 보인다. 1층탑신은 4매판석이고 각 면에 우주를 각출하였으며 2층탑신부터는 갑자기 그 높이가 줄어들면서 체감을 보였다. 옥개석은 상면에 1단괴임을 표출하고 처마는 엷은 편으로 평박하여 전각의 반전은 밋밋한 편이다. 층급받침은 3층까지는 5단이며 4~5층에서는 4단으로 줄었다. 또 옥개석 네 귀퉁이에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있고 상륜부는 露盤만 남아 있다.
이 석탑에서 북쪽으로 8Km쯤 떨어진 천봉산 아래에 봉갑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탑이 위치한 사지는 오동사라 하여 그 末寺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탑은 탑신부에서 일부 교란 되고 원래의 모습을 약간 잃은 상태였으나 1990년 해체하여 완전히 복원 하였다. 1층탑신 이 높은 편으로 탑이 전체적으로 고준한 감이 있긴 하나 아직도 2층기반을 고수하고 있으며 기반부 면석에 불상을 부조(浮彫)하는등 장식을 보이고 있다. 조성시대는 고려 전반기로 추정된다.
현 황
지정 번호 : 보물 제1115호
지정년월일 : 1992년 1월 15일
소 재 지 : 복내면 탑동길 27-5
소 유 자 : 국유
규 모 : 총고 6m
재 료 : 화강암
시 대 : 고려시대
보성 유신리 마애여래좌상 ( 寶城 柳新里 磨崖如來坐像 )
장 소 : 전남 보성군 율어면 유신길 195(유신리 산 125-1)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거의 전체를 병풍처럼 둘러 감싸고 있는 존제산의 북쪽 기슭에 새겨져 있다. 거대한 화강암의 바위에 한쪽 면만을 도드라지게 새긴 마애불(磨崖佛)이다. 이곳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존제사(尊帝寺)의 절터라고 전해오고 있는데 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기와조각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민머리의 중앙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둥글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코와 입부분이 파손되었다. 둥글고 탄탄한 어깨는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자비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양팔에 걸쳐 무릎을 덮었는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어깨 부분이 별도의 쇼올을 걸친 것 같이 표현되어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두 손은 가슴에서 모아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데 설법을 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선 안에는 구슬 모양을 조각하였고,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바깥부분에는 불꽃무늬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臺座)의 아래 부분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잎, 가운데 부분에는 기둥과 구슬 모양을, 윗부분에는 위로 향한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고려 초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이 석불은 율어면(栗於面) 존제산(尊帝山:해발 704m)으로 올라가는 입구 산기슭에 있다 유신리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지점인데 가로 4.3m 높이 5m의 암벽에 浮彫로 양각한 마애불이다. 옛부터 이곳을 「미륵등」 이라 불렀다고 하며 지금도 인근에서 고와편(古瓦片) 등이 발견되고 있다. 불상의 양식을 보면 높직한 육(肉)계와 소발(素髮)의 머리를 갖추고 얼굴은 원만상 이나, 콧등에 손상을 입어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마와 눈썹의 선이 뚜렷한 것이 인상적이며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감돌고 있다. 귀는 길게 늘어뜨려 어깨위까지 내려 왔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여실하다. 법의는 통견(通肩) 으로 양어깨에서 다른 한겹의 어깨걸이개를 걸치고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우리나라 에서 퍽 희귀한 예라 하겠다. 가슴밑으로 내려온 의문(衣紋)은 다른 불상에서 보는 예와 비슷하고 수인(手印)은 두 손을 앞가슴에 대고 왼손의 엄지와 인지를 잡고 오른손도 역시 같은 형식을 한 전법륜인(轉法輪印) 즉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무릎으로 내려와서는 결가부좌를 했는데 길상좌(吉祥座)이며 그 밑으로 연화대 (蓮花臺)를 안치 하였는바 앙연(仰蓮)과 복연(伏蓮) 모각하고 밑으로는 하대석인 중석을 배치하였다. 중석은 양편에 우주(隅柱)와 중앙에 탱주를 조출 하였으며 맨 하단에는 형식화된 연화문을 엷게 각(刻)하였다.
광배(光背)는 주형광배(舟形光背)로서 중앙에 연화문(蓮株紋)의 내외로 이조(二條) 의 횡대(橫帶)를 돌렸다. 그 밖으로 화염문이 조식(彫飾)되었는바 이 화염문은 고식을 띠는 반면 월출산 용암사지마애불(국보 114호)의 예와 유사한 점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 그 예가 거의 없는 양어깨의 어깨걸이라는 특이한 의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북위나 북조시대 금동불에서 유행을 보았던 양식으로, 이곳 전남지방에서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불상의문 연구에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성년대는 9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현 황
지정 번호 : 보물 제944호
지정년월일 : 1988년 4월 1일
소 재 지 : 율어면 유신길 195
소 유 자 : 국유
규 모 : 총고 4.3m, 좌상고 2.1m
재 료 : 화강암
시 대 : 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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