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백광욱 2023. 11. 24. 00:02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물은 만 가지나 있지만 몸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몸은 여러 기관이 있지만 마음보다 귀한 것이 없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며 외물에 휘둘리는 것은, 어진 이는 하지 않는 것이다.

 

夫物有萬品, 莫重於身, 身有百體, 莫貴於心, 勞心以役物, 賢者之所不爲也.
부물유만품, 막중어신, 신유백체, 막귀어심, 로심이역물, 현자지소불위야.

- 신작(申綽, 1760∼1828), 『석천유고(石泉遺稿)』 3권 「자서전(自叙傳)」

 

< 해설 >

위의 문장은 신작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쓴 「자서전(自叙傳)」의 말미이다. 신작은 조선 후기의 경학자로, 부친은 신대우(申大羽)이며 모친은 정제두(鄭齊斗)의 손녀로 강화학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늦은 나이에 부친의 권유로 과거 시험을 보고 급제하였지만, 부친상을 당한 이후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은거하기로 한 이후로는 한 해에 한 번도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맑고 편안하게 지내며 남들과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몸이고, 몸에서 가장 귀한 것이 마음이라는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상투적인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냐는 질문에 ‘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신작이 살았던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로지 과거 시험만을 위해 살다가, 과거 급제가 되고 나서는 관직에 매몰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옛사람들이 생각했을 ‘후대(後代)’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15년 전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나는 보여진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현재, 이곳’에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은 뒤로하고, 온라인과 모바일 속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를 쓴다. 내가 가진 소유물을 보여주며, 그 소유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는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주인공들이 현실 세계로 나온 것만 같다. 존재하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텅 빈 갑옷뿐인, 존재하지 않는 기사(奇士)와 육체를 가지고 실제로 존재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하인,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젊은이가 그들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어떤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하고 병들게 한다면, 내 존재의 무게는 자연히 가벼워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숱한 유혹 앞에서 갈팡질팡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몸이고 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내 존재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일 때이다.

 

글쓴이  :  신로사
한문고전번역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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