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의 향기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백광욱 2017. 12. 5. 07:12

 

 

 

공부하라,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닭이 알을 품고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이,
굶주린 자 밥을 찾고 목마른 자 물을 찾듯이,
어린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切心做工夫, 如雞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절심주공부, 여계포란, 여묘포서, 여기사식, 여갈사수, 여아억모.


- 휴정(休靜, 1520~1604), 『선가귀감(禪家龜鑑)』

해설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고3 교실에 붙어 있을 법한 글귀다. 열심히 공부하여 더 좋은 대학에 가라, 더 좋은 직장에 가라, 더 높은 지위에 오르라, 더 많은 돈을 벌어라, 우리 사회에서 보통 공부는 그런 것이다. 휴정도 그런 뜻으로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것일까.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당(淸虛堂) 휴정은 임진왜란 때 침략한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선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사명 유정(四溟 惟政), 소요 태능(逍遙 太能), 편양 언기(鞭羊 彦機) 등의 수많은 문도를 양성하고 『선가귀감』,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심법요초(心法要抄)』, 『운수단(雲水壇)』, 『청허당집(淸虛堂集)』 등의 여러 책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선가귀감』은 그의 저술 중의 하나로, 여러 불교 전적에서 귀감이 될 만한 글을 뽑아 해설을 붙인 책이다. 일찍이 언해(諺解)되었고, 조선 후기에 다수 간행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도 전래되어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휴정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고 한 공부는 다름 아닌 수행이었다. ‘공부(工夫)’는 불가와 유가에서 모두 쓰였던 말이므로, 수행이라고 풀이해도 좋고, 수양이라고 풀이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그 공부가 자신의 삶과 유리된, 수단으로써의 공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출세의 수단으로써의 공부가 아니라 삶의 문제에 대한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공부를 지향했다고 할까. 이제야 위 글귀가 조금 이해된다.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하라, 노력하고 노력하라,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것이 휴정이 간절히 공부하라고 한 말의 속뜻이 아닌가 한다.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는 『다가올 역사, 서양문명의 몰락』에서 현대 문명이 몰락한 300년 후의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는데, 인류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지식이 무척 방대했다는 점, 그런데도 지식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는 지식이 수단이 되는 세상, 공부가 수단이 되는 세상에 대한 경고와 다름없다. 지식이, 공부가 삶과 괴리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보통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 공부 말이다.

 

   혹여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오늘이라도 선현들이 하라고 했던 그 ‘공부’를 한번 돌아보아도 좋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글쓴이손성필(孫成必)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