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과 해학의 상징, 토끼를 찾아라 !
새로운 달력을 보니,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더 확실히 느껴졌답니다. 어느 날 행복지기의 가까운 친구는 꽤 근심어린 표정으로 매일 잠에 들 때마다 꿈을 많이 꾸고 자주 깨는 탓에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며, 해가 바뀌어도 달리지지 않을 것 같다는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소중한 사람이라 그 말이 마냥 푸념으로만 들리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는 저는 친구의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평소 전시 보는 것도 좋아하는 지인을 위해 여러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계묘년癸卯年을 맞이 상설전시가 눈에 들어왔어요. ‘토끼’ 관련 전시품을 소개하는 전시였는데요.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고자 했던 선조들이 귀여운 모습의 토끼를 문화유산 곳곳에 등장시켰던 것이죠. 곧잘 놀라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동물로만 알았는데 우리 선조들은 그 안에 용맹스러움을 보았던 걸까요. 친구의 속상한 마음도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안한 전시는 일단 반쯤은 성공이었는데요.
한참 지속되던 강추위가 영상 6도까지 올라갔던 어느 날 친구와 저는 전시가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총 6실의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는데요. 전시기간이 4월 23일까지라 다음에는 홀로 관람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흡족한 전시였어요.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절한 안내도 덕분에 편한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층에서 3층을 오르내리며 보았던 전시품 중에 인상 깊었던 몇 점을 소개해 보자면,
<백자 청화 토끼 모양 연적> 조선 19세기 말
푸른 파도 위에 물속을 내려다보는 토끼 모양의 연적이었는데요. 거북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으로 갔다가 재치로 목숨을 구한 <토끼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예로부터 토끼는 재치 있는 동물로 여겨졌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푸른색을 좋아하다 보니, 맑고 청명한 푸른색의 토끼가 참 귀엽게 느껴졌어요. 이런 귀여움으로 어떤 나쁜 기운을 막아줄 수 있을지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둥근 달을 바라보는 토끼> 조선 19세기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가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토끼는 달에서 방아를 찧으며 불사약을 만드는 영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불사약이라니요. 저는 친구의 팔을 끌어당기며, 죽지 않는 약이 있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처럼 여겨진다며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만큼이나 옛 선조들 또한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던 그림이었습니다.
<매를 피해 숨은 검은 토끼>조선 19세기
검은 토끼가 나무 아래 구멍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 채 몸을 한껏 웅크리고 매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그림은 마치 아이가 숨바꼭질 하는 것처럼 순수한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뜬 토끼와 뾰족한 부리 사이로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는 매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그림이어서 상상의 폭을 더 넓혀주는 것 같았습니다. 매의 눈에는 토끼가 우스꽝스럽게 보였을까요? 차라리 토끼가 일절 움직이지 않으니 죽은 먹잇감을 보듯 흥미를 잃어버리길 바라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역시 우리 선조들의 익살과 해학이 느껴졌습니다. 토끼 입장에선 참 재빠른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쪽이었겠지요. 그 외에도 몸체가 연꽃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향로를 떠받친 세 마리의 토끼도 인상 깊었습니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저와 친구는 전시 관람을 끝내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귀여움이라는 용맹을 장착한 여러 토끼들을 둘러보다 보니 내 마음에도 귀여움이 묻어, 속상한 마음이 밀려난 거 같다고 말입니다. 어떤 해결책만이 능사가 아닐 때도 있는가 봅니다.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저와 친구는 더 귀엽고 익살스러운 것을 가까이 두면 좋겠다는 말로 전시회 나들이를 마무리했답니다!
< 출처 : 행복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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