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치울 수 없는 것들
도저히 치울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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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잡아 집을 치운다. 혼자 살게 되면서 청소라는 행위가 나의 영역으로 넘어온 이후로는 결벽증에 가까우리만큼 깔끔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그렇다고 더럽히기를 꺼리는 건 아니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방 안에 무너지듯 하루를 온통 쏟아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때까지 게워내지 않으면 다른 하루를 받아낼 공간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곳곳에 널브러진 흔적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물건들이 생각하는 자리에 없으면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아마 내가 벌이고, 선택하고, 어지르고, 치우기에 애착이 붙어서일 거다.
계절은 단지 숫자뿐만 아니라 어떤 내음으로 다가왔음을 어필한다. 계절이 내뿜는 선선한 바람을 들이켰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 좋게 온몸을 감싸는 시원한 바람과 따듯한 햇살이 방안 가득 채워주는 것에 비해 집안의 상태가 영 형편없었다. 치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루를 시작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창문을 끝까지 열어젖히고 집을 정돈했다. 이불을 고이 접어 포개두고, 미뤄두었던 설거지를 끝내고, 화장실 구석의 곰팡이를 씻어내고, 세탁기를 돌렸다. 잔뜩 어질러진 주변을 정리하느라 정작 나는 땀범벅이 되어 서 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깨끗해진 집을 천천히 둘러보며 쓸데없이 먹먹해졌다.
나는 엄마가 내 방을 청소하는 게 싫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을 침해당한 불쾌함과 더불어 내 물건을 쉽게 버리는 것이 신경 쓰였다. 공부로 예민한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엄마는 내 방을 청소하지 않으셨고, 서울로 대학을 왔으니 내가 쓰던 방의 물건들은 모조리 없어졌을 거라고 속단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 보니 내가 쓰던 책, 침대, 질 판, 옷장까지 어느 것 하나 헝클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단체 둔 물건들을 보며 자식의 하루를 더듬어 보셨던 걸까.
이제 흔적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청소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정리하며 스스로가 많이 지쳤음을 뒤늦게 개 닫고 토닥여준다. 대단한 돈을 들여 치장해주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밥 한 끼 든든하게 먹는 것 정도는 자주 해줘야겠다. 떠나간 계절과 함께 사라진 지난 흔적을 되짚어보는 일이란 꽤나 가슴 먹먹한 일이었다.
얇은 옷 하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청소를 한 덕분인지 복잡했던 머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직 어질러진 마음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손이 닿지 않는 저 너머의 기억과 감정으로 더럽혀진 가슴속은, 청소가 되긴 하는 걸까. 휴대폰에 묻은 지문처럼 내 손으로는 절대 지워낼 수 없을 거다.
기억과 감정은 결코 치울 수 없는 것들이라 그것들의 청소는 나의 손을 떠나갔다. 그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언제쯤 사라지려나 애꿎은 집만 죽어라 치워댄다.
-이수용 산문집 <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습니다만> 중에서
< 출처 : 행복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