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일은 늘어가도 고마운 일은 줄어 간다
미안한 일은 늘어가도 고마운 일은 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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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사의 토크 프로그램 방청에 당첨된 날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진행자가 맡은 프로그램이라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싶은 마음에 신청했는데, 거짓말처럼 초대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마침 동반인이 가능하다기에 잔뜩 신이 나서 친구에게 물었다.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 시간 되면 같이 갈래?”
친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러자고 했다. 서너 시간이라 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명의 이야기가 오갔다. 방송 특성상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어 잠깐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순간들이 잠시의 피로함을 이길 만큼 상당히 의미 있었다. 다만 친구의 흥미까지는 끌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방청이 끝나고 나오며 괜찮지 않았냐. 긴 시간 방청하느라 고생했다. 민망함에 떠들어 댔다. 시작할 때만 해도 같이 와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이 컸는데, 끝나고 나서는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커졌다.
한 달이 지나고 또다시 방청에 당첨됐다는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막상 누군가에게 가자고 제안하자니 덜컥 집이 나서 혼자 갈까 한참을 고민했다.
고마움이 미안함으로 바뀌고서 밀려오는 허무함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결국 혼자 가기로 결정하고, 늦은 밤엔 친한 형과 술을 마셨다. 혹시나 해서 그에게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본인도 너무 가고 싶은데 자기보다 더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매번 방청 신청을 했는데도 당첨됐다는 문자가 오지 않아 우울해했다며 나보고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그 부탁에 응했다.
방청이 진행되는 내내 나는 그가 즐거워하는지 곁눈질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는 가기 전부터 상기된 얼굴로 몇 번이고 내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겠다는 사람, 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좋다니 기꺼이 함께 해주겠다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하는 사람. 섭섭하고, 미안하고, 고맙다. 이제 섭섭하고 미안한 일은 늘어 가는데. 고마운 일이 눈에 띄게 줄어간다. 그래서 어색하고 불편할지라도 미안한 게 고마운 거 아니겠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는지 모른다.
서로가 행복한 일을 함께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간신히 찾은 그날의 고마움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하루를 꽉 채웠던 말, 고맙고, 고맙고, 고맙다.
– 이수용 산문집 <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습니다만> 중에서
< 출처 : 행복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