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결, 자족(自足)
번역문 |
홀로 있을 때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오래된 책을 펼쳐 보며 한가롭게 드러누우면 그뿐이다. 잡생각이 나면 밖으로 나가 산길을 걸으면 그뿐이고 손님이 오면 술을 내와 시를 읊으면 그뿐이다. 흥이 오르면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부르면 그뿐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뿐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뿐이다. 춥거나 더우면 내 옷을 입으면 그뿐이고 해가 저물면 내 집에서 쉬면 그뿐이다. 비 내리는 아침, 눈 오는 한낮, 저물녘의 노을, 새벽의 달빛은 그윽한 집의 신비로운 운치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어렵다. 말해 준들 사람들은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날마다 스스로 즐기다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내 평생의 소망이다. 이와 같이 살다가 마치면 그뿐이리라.
원문 |
獨居則撫破琴閱古書, 而偃仰乎其間而已, 意到則出步山樊而已, 賓至則命酒焉諷詩焉而已, 興劇則歗也歌也而已, 飢則飯吾飯而已, 渴則飮吾井而已, 隨寒暑而衣吾衣而已, 日入則息吾廬而已. 其雨朝雪晝, 夕景曉月, 幽居神趣, 難可爲外人道也. 道之而人亦不解焉耳. 日以自樂, 餘以遺子孫, 則平生志願. 如斯則畢而已.
-장혼(張混, 1759~1828), 『이이엄집(而已广集)』 「평생의 소망(平生志)」
해설 |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현대인의 욕망은 자기 내부로부터 나오는 진짜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좇는 결핍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끊임없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이 칭찬하는 것, 남이 좋아하는 것을 좇으며 살았다. 부모가 원하는 욕망, 미디어가 부추기는 욕망을 나의 행복인 양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의 욕망은 어떠한 것인지, 욕망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시인인 장혼(張混)은 적게 욕망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알았던 사람이다.
장혼의 자는 원일(元一), 호는 이이엄(而已广), 공공자(空空子)이다. 그는 중인 출신이었다. 중인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속한 계급이다. 중인은 사회적 차별을 받아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벼슬에 오르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어릴 적에 개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려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다. 또한, 그는 무척 가난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며, 가난 때문에 벼슬을 했으나 봉급이 너무 작아 변변치 못한 끼니조차 잇지 못했다. 날마다 가난으로 괴로워하며 마음속에 항상 고통을 숨겼다. 가난을 통곡하고 싶었으나 감히 통곡도 못한 지가 이미 오래다.[余生於貧長於貧, 迨爲貧而仕也, 祿亦貧薄, 菽水不能繼. 日困於貧, 心常隱痛, 欲哭貧而不敢發久矣.]” 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혼은 부잣집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허드렛일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 나갔다. 가난을 해결할 기미가 없자 이웃에 살던 김종수(金鍾秀) 정승에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다. 하급의 아전자리를 얻은 장혼은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서른두 살에 교서관(校書館)의 사준(司準)으로 취직했다. 사준은 책의 교정을 맡은 직책이었다.
그로부터 장혼은 평생 전문 편집자의 길을 걸었다. 중인 신분, 불편한 몸, 가난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다양한 업적을 쌓아 갔다. 특히 그는 아동용 교과서를 많이 출판했다. 교정을 보는 솜씨도 상당히 뛰어나 상급자의 인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이 온 나라에 퍼졌다. 궁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그에게 교정을 부탁할 정도였다. 책 한 권을 만들면 품계를 올려 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번번이 사양했다. “봉급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받겠지만 승진은 제가 욕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정조는 그를 기특하게 여겨 봉급을 더 올려주었다.
그는 학문도 뛰어났다. 특히 시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시를 지으면 서로 읊어서 전해질 정도였다. 당시에 중인들은 인왕산 부근에서 모여 살았는데, 장혼 역시 인왕산 근처에서 시를 짓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살 만한 집터를 구하던 중 옥류동 길목 끝자락에 있는 버려진 낡은 집을 발견했다. 좁고 기울고 허름했지만 마음에 딱 맞았다. 집 앞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고 너덧 걸음 떨어진 곳엔 여러 사람이 앉을 만한 너럭바위가 있었다. 장혼은 50관을 주고 약 삼백 평 되는 집터를 사서 집을 새롭게 꾸밀 계획을 세웠다. 그는 크고 화려한 집을 원하지 않았다. 기와도 얹지 않고 색칠도 하지 않은 평범하고 소박한 집을 짓고 싶었다. 윗글은 집을 짓고 나면 살아가고픈 장혼의 소망을 쓴 것이다.
장혼은 집의 이름을 이이엄(而已广)으로 정했다. 이이엄은 ‘그뿐이면 족한 집’이란 뜻이다. 집의 이름을 당(堂)이나 재(齋)가 아닌 ‘엄’으로 붙인 것도 독특하고 ‘이이’라는 뜻을 붙인 것도 흥미롭다. 이 말은 당나라 시인인 한유의, “허물어진 집, 세 칸이면 그뿐[破屋 三間而已]”이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 ‘이이’는 ‘~일 뿐’이란 뜻으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덥든지 춥든지 주리든지 배부르든지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를 자족(自足)이라고 한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라야 흡족해하는 것이 만족(滿足)이라면, 자족(自足)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장혼은 자족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면 그뿐, 더 이상의 욕심은 바라지 않았다. 단출한 집에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그가 평생 소망한 삶이었다.
그러나 집을 곧바로 마련하지는 못했다. 집을 짓기 위한 비용 300관을 마련하지 못해 십 년 동안 돈을 모아 간신히 집을 장만했다. 비록 비바람을 가리지도 못할 만큼 누추한 집이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울타리 옆 아내는 절구질하고, 나무 아래 아이는 책을 읽는다. 사는 곳 못 찾을까 걱정하지 마시게. 여기가 바로 내 집이라네.[籬角妻舂粟, 樹根兒讀書. 不愁迷處所, 卽此是吾廬.]”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이전 해에 그는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더위, 죽음과 삶, 재앙과 복은 운명을 따르면 그뿐이다.[其飢飽寒煖死生禍福, 聽之命而已].”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평생 되뇐 말은 ‘그뿐[而已]’이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이니, 욕망을 없앨 수도 없거니와 무조건 욕망을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그네처럼 살다가 빈손으로 떠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한번 떠나면 그뿐인데, 평생 남의 욕망을 욕망하다가 가버리기엔 삶이 아쉽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누리지도 못하면서, 남의 것만 욕망하며 살다 간다. 그뿐이면 되는 삶인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며 사는구나.
글쓴이박수밀(朴壽密)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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