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삶/오늘도한마디

묘비명

백광욱 2009. 7. 7. 08:31

묘비명

 

묘비명은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고 한다.

고인은 누웠지만 묘비명은 서서 찾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돌에 새긴 고인의 목소리는 세월이 지나도 생전의 육성인 듯 생생하다.

짧은 글귀에는 고인의 삶이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 묘비명은 인생을 돌아보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천상병 시인의 묘비명이다.

세상에 소풍 나왔다가 귀천(歸天)한 그의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담겨 있다.


“에이, 괜히 왔다.”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스님의 묘비명이다.

기행으로 일관한 스님답게 마지막 인사도 해학이 넘친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해.” 작가 헤밍웨이의 묘비명도 익살스럽다.


위트가 넘치기로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압권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의 명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그대가 할 일은 찾아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은 끝까지 그대를

쫓아다닐 것이다.” 이런 말을 했던 버나드 쇼도 우물쭈물하다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의 묘비는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의 꽃”이라고 탄식한다.


한 줄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새겨진다.

명사들의 묘비명만 그런 것은 아니다.


경기 파주 교하읍 야산의 어느 무덤 앞에는 이런 비문(碑文)이 서 있다.

둥그스럼한 돌에 ‘한 송이 코스모스’라는 제목을 달아 시처럼 새겨나간

글이다.

 

“옛날에 한 송이 코스모스가 있었어요.

아름다움을 뽐내지 아니하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코스모스.

바람에 흔들리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코스모스.

엄마는 그런 분이셨죠, 남에게 베풀면서 주의 향기를 내뿜는 분.

아름답지만 뽐내지 않는 그런 분.

엄마를 닮아 은은한 주의 향기를 내뿜으며,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그 밑에는 남편과 두 딸의 이름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얼굴은 모르지만, 코스모스 같았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묘비명은 고인의 삶을 거울처럼 비춘다.

돌로 만든 거울을 들여다보니 고인의 자취뿐만 아니라 남은 이의 슬픔,

그리움까지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명이 정해졌다.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기기로 했다고 한다.

짧은 비문은 두고두고 그의 삶을 비춰줄 것이다.

‘돌거울’은 고인의 자취뿐만 아니라 남은 이들의 마음까지도

비춰줄 것이다.


- 김태관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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